[19:1-15] 남편과 아내의 관계, 어린이를 축복하심
먼저 이혼에 관한 율법으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고, 예수님은 그들의 생각을 뛰어 넘으신다. 실제적인 불성실 외에는 남편과 아내의 결합을 깨뜨릴 수 없다. 당대의 유대인들은 아주 사소한 이유로도 이혼을 성립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결혼은 그리 가벼운 것이 아님을 말씀하신다.
제자들은 "만일 사람이 아주 사소한 이유로 어느 때든 아내와 이혼할 수 없다면 아예 결혼하지 않는 것이 좋겠네요?"라고 묻는다. 예수님은 그런 제자들의 생각을 바르게 인도해 주기 위해 바른 표준을 제시한다. 아담과 하와의 결합을 통해 부부의 결합은 아무 밀접한 것임을 말씀하신다. 또한 경솔한 이혼 후 다시 결혼하는 것은 7계명을 범하는 것이라 나무라신다. 즉 결혼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크게 존중되어야 한다. 이는 인간의 범죄 전에 시작된 관계며, 그리스도와 교회의 결합을 비유하기 위한 관계기도 하다. 그러므로 결혼은 분별있게 심사숙고하여 결정되어야 한다.
또한 제자들이 어린아이들을 데려온 사람들을 꾸짖는데 예수님은 어린아이들이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어린아이는 아직 약하고 의존적인 존재다. 그러나 나는 다른가? 나도 주님께 의존해야만 하는 존재이며 나의 죄에 쉽게 넘어지는 연약한 존재다. 어린아이에게 손을 얹고 기도하셨듯이 나를 붙드신다. 또한 이 말씀을 실제적인 관점으로 살필 때 어린 아이들에게 신앙의 교훈을 가르칠 수 있으며, 마땅히 가르쳐야 함을 가르친다. 결혼을 통해 아이를 낳았다면 그들을 주님의 자녀로 키우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 노력은 헛되지 않을 것이다. 아들인 어거스틴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한 모니카를 기억하자.
[19:16-22] 부자 청년
이 말씀을 통해 신앙에서 좋은 감정만이 은총이 아님을 다시금 깨닫는다. 우리는 진리를 지적으로 알 수 있고, 양심의 가책을 느낄 때도 있다. 때로는 북받치는 감정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신앙의 증거는 아니다.
회심하지 않는 자는 영저인 문제에 대해 무지하다. 부자 청년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구원이 가능하다 믿기에 예수님께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겠냐고 묻는다. 또한 그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십계명의 두번째 부분을 다 지켰다고 말한다. 율법의 본질을 바라보는 자연인의 마음의 눈은 너무도 어둡다.
예수님은 젊은이의 마음 속 우상을 지적하신다.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우리는 그 무엇보다 구원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그러나 이 부자 청년에게 돈은 영생보다 귀중한 것이었다. 우리는 얼마나 끊임없이 물질의 유혹을 떨치지 못하는가! 비밀스럽게 집착하는 나만의 우상을 포기하도록 더욱 나 자신을 깨뜨려야겠다.
[19:23-30] 모든 것을 버리라
부는 우리 영혼에 큰 해를 입히기 쉽다. 우리는 그 때문에 많은 유혹에 빠진다. 돈을 잘 활용하되, 돈을 지나치게 사랑하지는 말아야 한다. 오늘날 우리나라는 얼마나 잘 사는가! 또한 한국 교회는 얼마나 부유한가! 그 부유할 때 유혹에 흔들리기 쉬우며, 종종 실패한다. 오늘날 조국 교회의 현실이 그렇지 않은가! 그러나 이것이 영국교회처럼 무너지기 직전에 이토록 조국 교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시는 것은 우리의 모습을 우리가 직시하고 돌아오도록 하는 하나님의 은총은 아닐까? 죄로 무너져가는 이스라엘과 유다를 본 선지자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이 때 더욱 회개해야겠다. 나만이 아니라 조국 교회를 위해 더욱 도고해야겠다.
예수님은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말씀하셨다. 그에 제자들은 그렇다면 부자는 모두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는것이냐 반문한다. 그에 대해 예수님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고 은혜의 대답을 주셨다. 아브라함, 욥, 다윗, 여호사밧, 요시야, 히스기야... 이들의 공통점은 부자였지만 믿음있는 자라는 사실이다. 부유한 자에게도 하나님은 은총을 주신다. 그러나 그들과 같이 세상의 부귀보다 하늘에 있는 보물을 구해야 한다.
이 사실을 예수님은 앞의 부자 청년에게 가르치신 것이다. 주님은 때로 이렇게 묻고, 명령하신다. 그 말씀 앞에 바로 서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항상 자문하자.
27-30절에서는 베드로가 우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는데 무엇을 얻겠느냐 묻는다. 그 때 예수님은 "너희는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고 말슴하신다. 아직까지 사도들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알지 못했다. 그러므로 사도행전에서도 베드로에게 환상으로 이를 깨우치는 장면이 등장한다.(행10:28) 그들은 자신의 희생에 자부심을 느끼고, 이에 중점을 두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얻게 될 보상을 말씀해 주시며 동시에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다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우리의 자만심을 제어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더욱 겸손해야 한다. 내가 얻은 구원은 나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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