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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29일 수요일

요한복음 13장

[요 13:1-11]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신다.(1절) 우리를 사랑하셔서 종의 몸을 직접 취하셨고, 우리를 돌보아 주신다.(4절) 예수님은 자기 피로 우리를 깨끗하게 만드셨으나, 여전히 우리는 물로 깨끗이 씻어야 한다.(5절) 이는 앞서 12:3절에서 예수님의 발을 향유로 씻은 것과 대비된다. 예수님은 온전히 거룩하시기에 영광을 받으셨으나, 우리는 예수님을 믿으나 여전히 이 땅에서 죄를 짓기 때문에 물로 씻어야만 한다. 그러나 우리를 이미 성도로, 거룩하다고 인쳐 주셨기 때문에, 발만 씻으면 된다.(10절)
 우리는 이 땅에서 점진적으로 거룩해져야 한다.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해주셨으나, 우리는 선을 행하기를 원하나 여전히 악을 행한다.(롬7:21) 우리는 점차 그리스도를 닮아 거룩해져야 하는 책임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스도의 도움으로만 이루어진다. 베드로 스스로의 힘으로 자기 발을 닦을 수 없었다. 예수님께서 닦아 주셔야 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자기 발을 맡겨야 했다. 나는 연구실이 바쁘다는 핑계로 기도, 말씀 생활을 게을리했다. 그러면서 나 자신을 믿는 것인지 바른 신앙인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나 자신을 그리스도 앞에 쳐서 복종하여 나아가야 할진대, 나는 너무도 교만하여 뻣뻣하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에 귀기울이기 보다는 내 편의에 따라 행동한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내 발을 맡겨야겠다.


[요 13:12-20]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모범
 제자들은 예수님을 "선생이라 또는 주라" 불렀다.(13절)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것이 사실이라고 인정하셨다.(13절) 사실 예수님은 그것을 넘어서신다.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의 중보자이시다. 그런 예수님을 "예수"라고만 부를 수 없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를 때 진실된 존경과 사랑이 담겨야만 한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고,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12절)고 물으셨다. 그 의미는 우리도 서로 발을 씻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14절) 발을 씻어주는 것은 겸손한자만이 할 수 있다. 사랑이 충만해야 할 수 있다. 우리는 그런 예수님을 닮아야 한다. 누군가 실수하고 모난 행동을 하더라도 우리는 발을 씻겨주어야 한다. 발은 더럽기 때문에 씻겨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것을 묵인하라는 것이 아니다. 사랑으로 권면하며 씻어주어야 한다. 이런 예수님의 모습을 난 닮지 않았다.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가 배반할 것을 아셨음에도(18-19절) 그를 배척하지 않으셨다. 이런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조금씩 깨닫는다. 다른 한편으로 그렇게까지 나를 사랑하시고 인내하시는 예수님을 생각하면 죄송스러울 따름이다.


[요 13:21-38]그리스도의 경고들
 예수님은 가룟 유다가 자신을 버릴 것을 이미 처음부터 알고 계셨다. 유다는 공생애 내내 예수님의 완전하심을 봤다. 그러나 그는 변하지 않았다. 내가 예수님을 믿는 건,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셨기 때문임을 믿을 수 밖에 없다. 얼마나 영광스럽고 감사한 일인가! 예수님은 유다에게 배신 당할 것을 아셨기에, 한 영혼의 타락을 알기에 괴로워 하셨다(21절). 그때 제자들은 누가 배신할 지 몰랐다(22절). 예수님은 유다가 배신할 것을 처음부터 알고 계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모질게 대하지 않으셨기에 제자들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베드로는 누가 배신하는지 요한에게 물어보러 했고(24절), 요한은 예수님 품에 누워(23절) 물어보았다. 요한은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가 사랑하시는 자"라고 적었다. 그는 겸손하여 결코 자신을 드러내려 하지 않았다. 또한 우리는 요한처럼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의 품 안에 머물러야 한다. 예수님은 유다에게 떡을 주셔서 배신할 자를 알리셨다(26절).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이 사실을 알리셨으나, 유다에게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했다(28절). 어떤 이들은 명절에 쓸 물건을 사라는 것으로, 또는 가난한 자에게 나눠주기 위해 물건을 사라는 것으로 이해했다(29절). 예수님은 원하신다면 이적을 행하여 먹을 것을 사지 않아도 된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구입하셨다. 누구에게 구걸하지도 않았고, 어렵지만 절약하여 일상을 해결해가셨다. 그뿐아니라 그 와중에도 어려운 이웃을 도우셨다. 이어 예수님은 사랑을 말씀하시는데, 우리는 이토록 우리를 사랑하신 그리스도를 본받아야 한다. 부요한 분이시지만,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신 분이다.
 예수님은 곧 다가올 죽음을 영광이라 말씀하신다(31절). 온 역사가 지켜보는 위대한 사건이며, 원수를 멸하셨다. 또한 불순종한 아담과는 달리 순종하셨다. 이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우리 삶의 목적이며 또한 우리는 그것으로 인해 영광을 받는다는 사실을 증거하는 것이다(32절).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명하셨다(34절). 그리고 그 사랑이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증거라 말씀하신다(35절). 유다는 예수님의 공생애를 같이 보낸 자다.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이 교회에 다닌다. 그러나 그것이 그리스도의 자녀라는 증거가 되지 못한다. 우리에게 사랑이 없다면 그리스도의 자녀가 아니다. 물론 우리에게는 사랑이 부족하다. 그러나 내가 점차 하나님을 본받으며, 그 사랑을 느낄 때, 우리에게는 그 사랑이 드러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난 얼마나 사랑이 없고, 비방하기 좋아하는 자인가!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낮아져야만 한다.
 예수님은 자신이 가는 곳, 제자들이 올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33, 35절). 그러나 베드로는 목숨까지 버려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한다(36절). 사실 베드로는 얼마나 용감한 제자였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런 그가 예수님을 3번 부인한다. 우리가 강한 것이라고 자랑하는 것도 얼마나 연약한가.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겸손히 받아들여야 한다. 나의 의지를 먼저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인정하고, 겸손히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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