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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8월 7일 수요일

아가 2장

2:1-2 : 자신과 교회에 관한 표현
1절 : 여자
2절 : 남자

여자는 스스로를 샤론 광야의 언덕과 습한 계곡에서 자라는 수선화, 골짜기에 핀 백합에 비유한다. 그러자 신랑은 '내 사랑'(신부)이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라고 말한다. 가시나무는 씨앗이 자라는 것을 막는 역경을 상징한다. 그러한 역경 가운데에서 자라났음에도, 그토록 아름다운 백합화. 그것이 우리 교회의 모습이다.

2:3-7 : 교회의 간구
3-7절 : 여자

 (3절) 신부는 신랑을 '남자들 중에 나의 사랑하는 자'라고 표현하여, 스스로의 정조를 드러낸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이 가져야할 자세이기도 하다. 우리는 우상을 섬기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찬양하며 경배해야 한다. 그리고 신랑을 특별히 '사과나무'라고 표현한다. 사과나무는 맛있고 풍성한 과실을 우리에게 준다. 그리스도와 연합한 우리는 영생이라는 풍성한 선물을 주시며, 하나님의 나라의 충만함을 누리게 하신다. 목마른 우리에게 생수(요 7:38)가 되어 주시며, 사랑, 희락, 화평과 같은(갈 5:22) 충만한 성령의 열매를 우리를 통해 맺으신다. 또한 사과나무는 그늘을 제공한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며 힘들고 지칠 때, 우리를 위로하신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과 사랑을 찬양할 때, 주께서는 우리에게 그 사랑의 풍성함을 누리게 하셔 우리로 기쁨과 위로를 주신다. 이러한 풍성하신 하나님의 은혜는 너무도 충만하여 달고 오묘하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너무도 달다. 왜냐하면 비록 우리가 세상에서 살아가며 지칠 때가 많지만, 그렇더라도 이후에 우리에게 주실 풍성한 하나님의 약속이 너무도 크기 때문이다.
 (4절) 3절에서 묘사한 신랑이 신부를 잔치집으로 인도한다. 잔치는 기쁨이 충만한 곳이다. 그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는 '그가 나를 인도'해야 한다. 우리의 기쁨은 오직 그리스도로부터 나온다. 그 사랑은 '깃발'이다. 깃발처럼 자랑스러우며 영광스러운 것이다.
 (5절) 신부는 신랑을 너무도 사랑하여 상사병에 걸렸다. 신랑을 향한 사랑이 너무도 강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의당 그리스도인의 자세다. 혹시 내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지식이 있지만, 사랑이 부족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본다. 여기서 건포도와 사과는 상사병을 달레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1장의 포도와 2장 3절의 사과는 모두 그리스도의 사랑의 열매를 뜻한다. 혹여 이 말씀이 그리스도를 향한 우리의 사랑의 표현이기에 혹여 이 말씀이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우리의 열정을 달래는 것이 그리스도의 사랑임을 통해 우리가 추구해야할 사랑은 매 순간마다 자라야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나 생각해보게 된다.
 (6절) 그러한 그녀의 사랑에 대한 보답으로 남편은 머리를 고이며 안아준다. 그리스도는 항상 우리의 간절한 사랑과 부르심에 응답하신다. 그리고 더욱 큰 사랑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신다.
 (7절) 그리고 그 사랑이 너무도 달콤하기에 그 사랑에서 스스로를 깨우지 말라고 부탁한다. 우리가 참된 그리스도의 사랑을 누렸다면 그것을 더욱 갈구하게 된다. 우리는 때로 힘든 상황이 닥칠 때 그 큰 하나님의 사랑을 잊는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큰 사랑을 잊어서는 안되며, 그러할 때마다 시험에서 이길 힘을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갈급해야한다.

2:8-13 : 사랑을 확인한 신부의 환희
8-9절 : 여자
10절-13절 : 남자

 앞에서의 내용이 정적이었다면 앞으로의 노래는 동적이다. 주로 식물로 비유했던 앞의 내용과 달리 동물로 비유하며 표현도 훨씬 활동적이다. 이는 사랑이 더욱 깊어져 간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8절) 신랑은 신부에게 다가간다. 멀리서는 목소리만 들리더니 점차 그가 넘어오는 모습을 보게된다. 이 책이 쓰여진 구약의 시대는 메시아를 기다렸다. 따라서 신랑이 점차로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은 말씀이 육신을 입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사건을 그린다고 볼 수도 있다. 인간의 관점으로 볼 때 그 시간은 너무도 긴 시간일 수 있지만, '달리고', '넘어오는' 모습은 하나님께서도 얼마나 이를 바라셨는지를 나타낸다. 또한 앞에서 상사병에 걸린 신부의 애통함과 신랑의 다가옴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보여준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다.
 (9절) 메시야가 오시기를 기다리며 많은 선지자들은 예언했다. 그들은 그 말씀을 통해 확신과 위로와 기대는 갖고 있었으나 온전히 보지는 못했다. 마치 창살 틈으로 엿본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또한 신약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서 온전히 세워지지 않고 여전히 환난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나 그런 우리가 희망을 갖는 까닭은 창살 틈을 엿볼 수 있는 까닭이다.

 (10절-13절) 신랑(그리스도)는 신부(교회)를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라 부른다. 이 부족한 자를 향한 이러한 부르심이 얼마나 큰 복인가! 뿐만아니라 일어나서 함께 가자고 말씀하신다. 앞에서 신부는 신랑이 없어 병이 들었고, 그 신랑이 오기 전의 시간은 겨울이었다. 우리는 힘든 시기를 보낼 수 있으나 신랑이 우리에게 나타나는 순간은 우리에게 큰 기쁨이 된다. 예수님은 우리의 빛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를 초대하는 그 아름다운 곳을 보라. 그곳은 하나님의 통치가 있는 왕국이다. 복음이 전파되어 변화된 모습이다. 그런 곳으로 신랑은 '일어나서 함께 가자'고 말한다. 우리의 본성은 악하여 주와 함께 동행할 수 없다. 그런 우리의 죄를 사하신 것만으로도 감사할진데, 그 하나님의 충만하신 영광 가운데 우리가 동행하시기를 바라시는 은혜를 베푸신다. 하나님은 이토록 사랑이 많으신 분이다.

2:14-17 : 교회를 핍박하는 것들에 대한 지시
14-15절 : 남자
16-17절 : 여자

 (14절) 신랑은 신부를 '비둘기'라 부른다. 비둘기는 성령, 평화 등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기서는 아름다움과 순전함을 상징한다. 우리를 그토록 사랑스럽게 바라보시며, 우리가 어떤 은밀한 곳에 있든지 바라보신다. 즉 나의 고통을 모두 헤아리시는 분이시며, 그 때에 스스로를 감추지 않고 하나님 앞에 나타나 얼굴을 보이며, 주님을 부르짖기를 갈망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의 그러한 간구를 주께서는 아름답다고 하신다.
 (15절) 포도원을 허는 여우를 신랑은 '잡으라'고 명령한다. 사탄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있지만 활동하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그런 사탄의 계략에 넘어가지 않도록 늘 깨어 있어야 하며, 아름다운 포도원의 꽃을 보호하기 위해 여우를 잡아야 한다. 그것은 이 세상을 하나님의 아름다운 나라로 만들어가려는 노력과, 스스로의 내면을 거룩으로 이끄는 노력을 모두 말한다. 뿐만아니라 아름다운 복음(포도원의 꽃)을 혼탁하게 만드는 잘못된 가르침에 대한 경계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깊이 공부하도록 명하시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16절) 그리스도와 성도의 연합이다. 이와 비슷한 표현을 예수님과 아버지 하나님의 상호 내재를 표현하는 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요 14:20)  또한 포도나무와 가지로, 하나님과 성도 사이의 관계로도 표현했다.(요 15:5)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해야 한다. 그리스도와 연합하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악한 본성을 죽여야 한다. 내 안의 의와 거룩은 나에게서 말미암은 것이 아니다. 그러하기에 사도 바울은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갈 2:22)
 (17절) 그리고 날이 새기 전에 돌아오셔서 어린 사슴이 되어 주기를 간구한다. 속히 주께서 나타나셔서 더욱 큰 영광을 바라보며 구약의 그림자와 같은 약속이 아닌, 실체를 보여주기를 갈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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