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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8월 30일 금요일

마태복음 9장

[9:1-13] 중풍병자를 고치심
 여기서는 두가지 사건이 나온다. 하나는 중풍병자를 고치신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세리와 함께 식사를 하신 사건이다.
 예수님은 중풍병자의 믿음을 보시고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1절)고 말씀하셨고, 그를 일으켜 세우셨다. 서기관들은 은밀히 속으로 예수님이 신성모독을 한다고 생각했고, 아무도 그들의 생각을 모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다. 우리 마음과 생각을 아시기에, 악한 생각을 숨길 수 없다.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 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난다"(히4:13)는 교훈을 기억하자. 그리스도 앞에 우리는 숨길 수 없다. 우리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신다.(롬2:16) 이를 기억할 때 우리는 늘 겸손할 수 밖에 없으며, 그리스도의 피가 모든 죄를 깨끗케 하실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된다.
 다음으로 마태를 부르신 사건, 세리와 죄인과 함께 식사하신 사건이 등장한다. 예수님은 세리를 사도로 부르시며, 그의 마음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분이다. 죄 많은 자도 성령의 권능으로 예수께서는 순종하게 하실 수 있다. 그리고 그 때 마태의 결단을 보면, 그는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고 따랐다. 이는 그에게 큰 복이 되었다.
 바리새인들은 주님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한다고 비난했다. 메시아는 세상에 오시어 구세주가 되시고 죄로 병든 영혼을 고치는 의원이 되기 위해 오셨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그런 메시아의 위대한 계획을 전혀 몰랐기에 주님의 거룩하신 말씀과 함께 책망을 들었다.
 이 말씀들을 보면 그리스도께 나아가기 위해 우리 자신이 죄인임을 깊이 느끼고 나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예수님은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 그분의 중보를 통하지 않고서 그 누구도 아버지 앞에 나아갈 수 없다. 그 은혜를 입고, 기억하여 그리스도의 충만함으로 매시간을 본자. 늘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그리스도의 은혜를 매순간 입으며 살자.

[9:14-26] 새 포도주와 새 부대
 예수님은 자신을 "신랑"이라 부르신다. 신랑으로서 우리를 깊이, 한결같이 사랑하시며,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시며, 동정하신다. 성도들은 장차 주님께서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영광을 함께 받을 것이며 그분이 계신 곳에 그들도 같이 있을 것이다. 이는 성도의 특권이다.
 세례 요한의 제자들처럼 금식하지 않는다고 바리새인들은 비난한다. 그 때 예수님은 충만한 지혜 가운데 논리적으로 제자들을 옹호한다. 이를 가르치시기 위해 "새 포도주를 가죽 부대에 넣는 것"과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것"을 가르치신다. 초심자들은 참을성을 배워야 한다. 그들은 즉시 모든 것을 받기를 기대해서는 안된다. 또한 그들이 회개와 신앙의 처음 원리를 철저히 배울 때까지 대수롭지 않은 일에 엄격한 잣대를 적용시키려 서둘러서는 안된다.
 여기서 예수님의 태도를 본받아야겠다. 그는 자기 제자들을 사랑하시고 옹호하셨다. 또한 비난하는 자들에 대해 왜 비난하느냐고 싸우지 않으셨으며, 이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려 하셨다. 성도라 하는 우리에게 이러한 모습은 얼마나 부족한가! 물론 전도는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나 종종 전도라는 이름으로 종교를 강압하는 장면을 본다. 우리는 상대가 진리에 없다고 해서 그들을 비난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그들에게 진리를 알리려 노력하되,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기독교는 결코 반지성적이지 않다.
 또한 주님은 겸손한 신앙을 가진 자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신다. 혈루증으로 열두 해나 앓은 한 여인이 주님의 겉옷만 만져도 고침을 받을 수 있다는 희망으로 만졌다. 겉옷만 만져도 나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이 큰 믿음을 주님은 칭찬하셨다. 때로 우리의 믿음이 연약할 때도 있다. 흔들릴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순간에도 그리스도만을 신뢰해야 한다. 그런 믿음만이 우리의 영혼을 구원한다.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다. 예수님은 죽은 소녀를 살리셨다. 죽은 자를 살리신 예수님은 죽음과 삶을 관장하는 하나님이시다. 즉 그는 창조주이시다. 이런 전능하신 하나님을 찬양하자. 그분께서 나를 사랑하신다.

[9:27-38] 두 소경을 고치심
 두 소경이 "다윗의 자손"이라 주님을 부른다. 그들은 주님이 행하신 기적을 보지 못하고 들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들은 믿음으로 확신하며 주를 찬양했다. 얼마나 강한 믿음인가! 우리는 주변에 왜 이렇게도 믿는 자가 없는가 안타까울 때가 있다. 엘리야가 그랬듯 성도는 나 혼자 남은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때도 주께서는 믿는 자를 예비해 두셨다. 또한 이 믿음은 차별없는 믿음이다. 그 누구라도 이 은혜의 말씀을 누리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큰 상급을 허락하신다. 주께서는 그런 그들을 기뻐하셨기에 그들의 눈을 뜨게 하셨다. 주님은 우리에게 선물을 주기 원하시는 분이다. 우리가 참되게 주를 예배할 때 주께서는 우리를 기쁘게 받으시며, 우리에게 큰 선물을 주실 것이다.
 예수님은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시며" "온갖 종류의 질병"을 다 고치셨다. 예수님은 병든 양심을 치료하시며, 병든 육체를 지닌 자를 불쌍히 여기신다. 주님은 소외당한 영혼에 관심을 가지신다. 나는 예수님께서 그러하셨듯이 주변의 불쌍한 영혼들에 대해 동정하는가? 본문을 보면 예수님은 그토록 백성을 긍휼히 여기시며 치료하실 때, 바리새인들은 예수를  귀신의 왕을 의지하는 자라 비방한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가르치시고, 복음을 전하실 뿐 아니라, 병들을 고치셨다. 물론 이교도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회심하지 않은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자녀, 백성으로서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이를 실천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의무가 있다.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라고 예수님은 한탄하셨다. 우리는 일꾼으로서 의무를 다해야 한다. 특히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기도로써 주님께 나아가며, 성령의 도우심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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