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15] 첫 전도자를 파송함
본문은 그리스도 교회의 최초 성직 수임식의 장면이다. 열두 사소들을 택하고 파견하실 때 새로 임명된 성직자들의 첫 의무에 대해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신다. 몇가지 교훈을 살펴보겠다.
모든 사역자들이 반드시 선하지는 않다. 가룟유다를 예수님이 택하셨다. 성직자로 임명된 자들이 다 회심한 것은 아니다. 또한 그 임명과 지위에 따라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 아니기에 우리는 그들을 그리스도의 위치에 놓아서는 안된다. 그들의 가르침을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보고 그들이 그리스도를 따르고 있을 때 우리는 그들의 말을 청종해야 한다.
목사로서의 위대한 일은 선을 행하는 일이다. 잃은 양을 찾아 기쁜 소식을 전해주고, 기쁨을 더해주도록 파송된 자다. 사역자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어 자기의 몸과 마음과 시간과 힘을 봉사하는 데에 바쳐야 한다. 게으르거나 경솔해서는 안된다. 성직은 봉사하기 위해 받는 것이다. 교회의 부족함을 보충하고 교인들을 두루보살피기 위함이다.(고후1:24)
복음의 제안을 무시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지극히 사소한 죄가 우리의 영혼을 파멸시킨다. 회개하지 않는 자가 가게 될 지옥은 소돔과 고모라보다 훨씬 끔찍한 곳이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마음에 그리스도께서 계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큰 죄를 짓는 것이다. 그리스도와의 교제 없는 행위는 아무런 열매가 없다.
또한 제자들이 전파한 내용은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것과 예수님의 사역을 보고 그 은혜를 입은대로 나누라는 것이다. 우리는 마지막 날에 살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언제 다시 오실지 모르지만 그 심판의 날은 가까왔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우리 자신을 채찍질 하며 말씀과 믿음 안에 깨어 있어야 한다. 또한 그 믿음의 기초는 사랑이다. 우리는 그 사랑을 받은대로 주는 자가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성도는 그리스도를 닮은 자이기 때문이다.
[10:16-23] 최초의 전도자에 대한 교훈
영혼을 구하려는 사람은 핍박을 각오해야 한다. 우리가 싸우는 세상은 죄다. 그 죄의 뿌리는 깊다. 이 핍박을 모를 때 우리는 열정이 가득할 수 있으나, 이에 곧 직면하며 그 열정은 시들해진다. 우리는 이리 가운데 보냄받은 양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불신자들에게 핍박을 당할 것이다. 이를 피하기 위해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핍박을 받을 때 입을 다물고 숨기며 신앙생활을 할 수도 있다. 우리는 침묵과 비겁과 다른 사람을 상관하지 않는 잘못을 범하기 쉽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말할 바를 우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 성령께서 내 속에서 말씀하실 것이다. 우리는 사도 바울이 그러했듯이 그러할지라도 복음을 전해야 한다. 불신자들을 향해 복음을 전하는 것이 그들을 화나게 하는 것이라며 노력하지 않기 쉽다. 그러나 그 핍박을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 때로 핍박이 심하다면 이 동네를 피해 저 동네를 가야 한다. 이를 분별하기 위해 늘 하나님께 기도하자. 때로는 그것이 복음 전파를 위한 하나님의 응답일 것이다. 우리는 이 동네에서 당하는 핍박을 우리의 혈기로 맞서서는 안된다. 주께서 갚으실 것이다. 우리는 온유한 자여야 한다.
물론 그 말이 우리가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대항할 필요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일제 치하에서 우리는 얼마나 큰 핍박을 당했는가! 그리고 그 때 우리는 신사참배를 요구받았다. 그 때 우리는 가만히 있어야 하는가? 그 말을 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세상이 하나님을 핍박하는 것과, 하나님의 자녀인 나와 그런 내가 하나님을 져버리게 하도록 핍박하는 것에 대한 구분이 있어야 한다. 그러하기에 하나님은 견디라고 말씀하신다.
그런 우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해야 한다. 예수님은 우리가 성도로서 일할 때 상식을 버리라고 요구하지 않으신다. 까닭없이 화를 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또한 지혜와 분별의 정신, 그리고 건전한 마음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며 나 자신을 순결하게 유지해야 한다. 은혜를 받은 심령도 성령과 지혜의 충만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행6:13) 이러한 은혜와 세상에서 마땅히 갖추어야 할 상식을 병행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다윗과 바울과 예수님을 보며 우리는 본받자. 이 세사에 예수님처럼 지혜로운 자는 없었다.
또한 세상의 약한 자들을 핍박할 때 우리는 가만히 있어야 하는가? 아니면 우리는 계획 없이 그리스도의 이름만을 외쳐야 하는가? 그건 아니다. 우리는 지혜로워야 한다. 각 성도에게 그러하기에 각자의 삶에서 최선을 다해야 할 책임을 주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10:24-33] 최초의 전도자에 대한 경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보내실 때 그들 앞에 도사리고 있는 것을 아시고 게셨다. 따라서 주님은 그에 대한 지침을 앞 본문에서 말씀하시고, 여기서 다시금 경고하고 계신다.
예수님의 가르침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었음에도 사람들은 그를 증오하며 "바알세불"이라 불렀다.(25절) 실수투성이인 우리들이 하는 노력은 어떠할 것인가? 우리가 최선의 노력을 하더라도 그리스도와 같은 취급을 받는 것은 전혀 놀랍지 않다. 세상은 우리를 증오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심판의 날까지 인내로 기다려야 한다. 왜냐하면 감추인 것과 숨은 것이 모두 드러나며 알려질 것이기 때문이다.(26절) 그러므로 세상에서 오해와 핍박을 당하더라도 우리는 그 일을 중단해서는 안된다. 마지막 날에는 올바르게 시정될 것이다. 심판의 날은 가까웠고, 우리의 정당함은 곧 입증될 것이며 칭찬이 있을 것이다.(고전4:5)
선을 행하려는 자는 사람보다 하나님을 두려워 해야 한다.(28절) 사람은 우리의 육체만을 해할 뿐이나 우리가 하나님에 반한다면 우리는 능히 지옥에서 멸할 것이다. 다니엘과 세 친구를 본받자. 인간과 세상을 두려워할 때 우리는 실수를 범하게 된다. 그러하기에 가디너 대령은 "나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므로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 것이다.
그 무엇보다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자. 하나님께서 나를 위로하시며 지켜주신다.(29절) 이 세상 모든 일은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
선을 행하려는 사람은 최후의 지위를 얻기 위해 주님을 만날 날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32절) 이 세상 사람들 앞에서 내가 하나님께 소속된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아야 한다. 때로는 비웃음과 조롱, 박해, 멸시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크고 무서운 심판의 날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고난과 수모를 당하셨고 잘 아신다. 우리는 그분이 주시는 위로를 달게 받자.
[10:34-42] 최초의 전도자에 대한 격려
예수님이 전하는 복음이 지니는 성격에 대해 말씀해 주신다.
그 복음은 모든 사람이 한 마음이 되어 천년왕국을 세우려는 것이 아니라, 분쟁과 분열을 일으키기 위한 것이다.(34-36절) 인간의 마음은 심히 부패했다. 우리는 죄와 타협할 수 없으며 그와 화합할 수 없다.
또한 우리는 세상에서 고난 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37-39절) 우리가 세상의 기쁨을 추구한다면 신앙을 포기하게 될 것이다. 성도는 최후에 면류관을 얻을 것이지만, 그 과정에 있어서는 십자가를 져야 한다. 우리가 우리는 평강은 그 끝을 알기에 누리는 평강이지 세상에서 누리는 쾌락이 아니다.
주님은 주의 이름을 위하여 일하시는 자들에게 상급을 주신다.(40-42절) 우리가 주를 위하여 일을 할 때에 아무도 보는 이가 없다고 생각할 때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신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보셨고, 요한을 보셨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결코 잊지 않으신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