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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1일 일요일

마태복음 17장

[17:1-13] 변화산상에서의 변모
 16장에서 십자가에 대해 설명하셨다면 여기서는 장차 있을 보상의 일부를 보게 된다. 제자들은 그 영광의 광경을 봄으로 말미암아 앞서 그리스도의 고난을 듣고 슬퍼졌던 마음이 기쁨으로 바뀌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그리스도와 그의 백성들이 보여주게 될 놀라운 영광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된다. 시련과 고난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의심하게 될 때 예수님은 이 약속을 보여주심으로 의심을 가라앉히신다.
 육체의 부활은 반박할 수 없다는 사실과 영생을 가르치신다. 모세와 엘리야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 속에서 나타났음을 통해 드러난다.
 또한 여자에게 태어난 모든 이들 가운데 예수께서 무한히 우월하시다는 증거를 보게 된다. 이를 위해 하늘로부터 목소리가 강력하게 나타내셨다. 베드로는 예수님과 모세, 엘리야를 위해 초막 셋을 짓겠다고 하여 세 사람을 동등한 위치에 올려놓았으나, 예수님 자신이 훨씬 우월함을 아버지께서 밝히신다. 우리는 그 누구도 그리스도의 위치에 올려두어서는 안된다. 아무리 훌륭한 조상이라 할지라도 한낱 인간일 뿐이다.

[17:14-21] 귀신들린 소년을 고치심
사단의 영적 지배의 많은 실례들이 존재한다. 여기서 등장하는 귀신들린 소년도 그 예 가운데 하나다. 이는 큰 고통이며, 그들은 하나님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 어떤 충고도 받아들이지 않고 무절제하게 쾌락과 폭력에 빠져있다. 그런 이들을 볼 때 우리는 실망하지 말고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이러한 이적을 볼 때 우리는 어떤 영혼을 구하려 할 때 절망하지 않을 수 있다.
 또한 믿음의 부족함의 결과로 나타나는 무력함을 뚜렷이 보게 된다. 믿음이 있을 때는 당당히 홍해를 건널 수 있었으나, 믿음이 시들었을 때 이스라엘 땅 앞에서 겁쟁이처럼 군 이스라엘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믿지 않으면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없다.(히3:19)
 또한 사단의 나라를 붕괴시키기 위해서는 근면과 수고가 필요하다. 예수님은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 제자들의 믿음 없음을 힐책하시는 말씀 가운데 이 것이 함축되어 있다. 과거의 성공으로 대단히 교만하여져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열렬한 기도와 근면한 금욕이 없었기에 패배와 실패에 직면했다. 우리는 무엇을 하든 "힘을 다하여" 해야한다.(전9:10)

[17:22-27] 물고기와 성전세
 이 본문은 마태만이 기록했다. 이 놀라운 이적은 성전세를 지불하기 위해 행해졌다.
 주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 반 세겔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네 선생은 왜 반 세겔을 내지 않느냐고 말하고, 베드로는 집에 들어갔다. 그 때 베드로가 말하기도 전에 예수께서 "네 생각은 어떠하냐"고 물으셨다. 주님은 거기 계시지 않았으나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 우리는 예수님께 우리의 위선과 죄를 숨길 수 없다. 우리는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서 행한 것"(창17:1)처럼 주님 앞에서 살려고 노력해야 한다.
 또한 주님은 전능하신 능력이 있으시다. 바다에서 낚시를 하여 성전세를 지불케 하셨다. 이는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 발 아래 두셨으니 곧 모든 우양과 들짐승이며 공중의 새와 바다의 어족과 해로에 다니는 것이니이다"(시8:6-8)는 말씀의 성취기도 하다. 이런 전능하신 주님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 자신을 낮추어 십자가에 못박히셨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또한 성전의 주인 되시는 예수님께서 성전세를 내실 필요가 없음을 증명하셨으나, 그럼에도 그들이 실족하지 않도록 자진해서 양보하신다.  그 이유는 "우리가 저희로 오해케 하지 않기 위하여" 하자는 것이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의 백성들이 화를 내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방해하는 것보다 차라리 자기 의견을 억누르고 승인할 수 없는 요구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굴복해야 할 일들이 있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최근에 종교 과세 때문에 말이 많았다. 사실 종교 과세를 행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가 이를 행할 경우 종교인의 소득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에, 그들이 거두어 들이는 세금보다, 최저 생계도 받지 못하는 목회자에게 주어야 하는 비용이 더 크기 때문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이 있었다면 우리는 법이 내지 않아야 한다고 하더라도 낼 수 있다면 내는 것이 옳은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차라리 과세하기로 법이 개정된 것은 다행으로 여겨진다. 지금 당장은 그때문에 힘든 교회가 많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주님께서 채워주실 것이다. 물론 그것이 아니더라도 세상은 끊임없이 교회를 비방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할 수 있는 것은 해야 하며, 이 세상에서 손해를 보는 것이 어쩌면 성도의 당연한 모습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그 때 주께서 넉넉히 채워주시리라는 믿음 또한 갖자. 아무런 영혼의 유익이 없다면 "우리가 저희로 오해케 하지 않기 위하여" 끈기있게 복종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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