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12] 누룩에 대한 예수님의 경고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은 서로 화합하지 못하는 증오심이 있었다. 사도행전에서 바울이 부활 논쟁으로 다툼을 하게 한 것을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행23:7) 그러나 그리스도를 핍박할 때만큼은 함께했다. 선을 대항하는 악의 본질은 이러하다.
이 본문에서 그들이 표적을 구할 때 예수님은 12:38-50에서 요나의 표적을 들어 말씀하셨던 바를 다시 사용하신다. 예수님은 종종 이렇게 반복해서 진리를 말씀하시는데, 이를 통해 말씀을 더욱 깊이 새겨주신다.
예수님은 다시금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의 교훈을 조심하라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섰다고 생각할 때에 넘어질까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그 경고를 끊임없이 조심해야 한다. 인간이란 너무도 연약한 존재기에 우리가 조심하지 않으면 언제 넘어질지 모른다. 물론 하나님께서 택하셨다면 넘어진 내가 다시 주님의 손길로 일어서겠지만, 그 대가는 얼마나 쓰라리며 내가 주님을 말씀을 져버렸다는 사실은 얼마나 안타까운 것인가!
거짓교훈을 누룩이라 칭하셨다. 거짓 교훈은 전체 진리에 비교할 때 매우 조그마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막상 들어오면 점차 퍼져나간다. 그러며 전체 성격을 변질시켜 버린다. 우리는 말씀을 읽을 때 항상 주의해야 한다. 이단의 가르침을 직접적으로 듣는 것도 주의해야 하지만, 우리가 말씀을 읽는 가운데 무리한 적용으로 그 말씀의 본질을 곡해하는 것 또한 주의해야 한다. 또한 더 나아가 이 세대에서 교회의 유익을 위해 우리는 그 거짓 교훈들을 분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말씀을 더욱 깊이 공부하며 그 반석 위에 굳건히 서야한다.
[16:13-20] 베드로의 신앙고백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을 가톨릭에서는 많이 곡해한다.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18절)은 결코 베드로가 교회의 토대가 된다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운다고 하셨다. 그 반석은 예수님이다. 7:24에서도 이는 잘 드러난다. 따라서 예수님의 이 말씀은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다. "너를 베드로, 반석이라 부르겠다. 왜냐하면 너는 그 힘찬 진리를 반석 삼아 그 위에 내 교회를 세울 수 있게 하는 바로 그 진리를 고백해 주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사도들을 교회의 주춧돌로 세운다는 말씀은 바른 진리 위에 교회를 세우는 임무를 부여받았다는 말이다.
또한 베드로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겠다(19절)는 말씀은 베드로의 수위권을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에게 유대인과 이방인 둘 다에게 처음으로 구원의 문을 열어주는 특권이 주어졌다는 말씀이다. 오순절 날 유대인들에게 설교했을 때, 이방인 고넬료의 집을 방문했을 때 이루어졌다. 그는 이 사실을 깨달았기에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라고 말한 것이다.(행15:7)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는 말씀은 고해성사가 가능하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해석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임무를 손상시킨다. 이 약속의 의미는 사도들이 구원의 길을 권위있게 가르치도록 위탁받았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논쟁의 여지가 있는 문제들에 대해 지도하기 위해 규칙을 제안해야 했다. 몇가지를 "매고" 금해야 했고, 다른 몇가지는 "풀고", 허락해야 했다. 예를들어 이방인의 할례의 불필요성에 대한 결정을 내린 예루살렘 회의를 볼 수 있다.
또한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베드로의 고백을 봐야 한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에 동조하는 사람이 거의 없고 많은 이들이 그와 대적 할 때 이런 고백을 했다. 예수님은 종의 형채로, 왕으로 보이는 어떤 외적 표시도 갖고 있지 못할 때 이런 고백을 했다. 우리는 여기서 베드로가 보여준 열심과 사랑을 본받아야 한다. 물론 우리는 사람이기에 실수를 할 때도 많다. 그러나 이러한 열심은 게으른 자를 흔들고 깨운다. 마틴 루터가 그러했듯이 말이다.
또한 우리는 교회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살펴야 한다. 예수님이 반석위에 세우겠다고 약속하신 교회는 "모든 믿는 자들로 이루어진 복받은 무리"를 말한다. 여기서는 비가시적인 교회를 말씀하시고 게신다. 모든 성도의 연합이다. 예수님이 그 머리 되신다.(골1:18)
예수님은 "음부의 권세가 그것(교회)을 이기지 못하리라"고 영광스러운 약속을 하셨다. 참된 교회는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굳건히 붙드신다.
[16:21-23] 주께 간하는 베드로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에 죽게 될 것을 말씀하신다.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기 위해 예수님은 오셨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이사야 53장에서 말한 어린양의 죽음을 메시아께서 성취하셔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심지어 제자들도 그랬다. 우리는 영적인 무지가 많이 있다. 우리는 더욱 깨달아 알아야 한다.
베드로는 주님을 설득하여 십자가의 고통을 피하게 하려 했다. 그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참된 목적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베드로는 이 죽음을 막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나중에 하기도 했다. 그러나 베드로는 회심한 자였고 메시아임을 믿었다. 훌륭한 신자들도 이러한 실수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과 사랑을 지닌 자이면 인내하며 사귀자. 지금은 알지 못하나 후에는 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의 속죄하는 죽음에 대한 교리만큼 중요한 교리는 없음을 강조한다. 베드로의 만류를 보시고 예수님은 "사단"이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으로 부른다. 예수님은 방금 전에 그에게 "복 있도다"라고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예수님은 그만큼 이 십자가 대속 사건을 기독교의 중심 진리로 깨닫기 원하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살전5:10)는 사실에 기초하지 않는다면 확고한 소망을 전혀 갖지 못할 것이다.
[16:24-28] 자기 부정과 영혼의 가치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에 대하여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봉사로 세상에서 명예를 얻고 현세에서 보상을 얻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예수님이 오신 목적을 앞에서 말씀하시고, 뒤이어 그를 따르는 제자로서 살아야 할 방도를 말씀하신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는 자기를 부인하고 고난을 받기로 결심해야 한다.
인간의 영혼보다 값진 것은 없다. 온 천하보다 귀한 것이 목숨이며, 영혼이다. 이 세상은 일시적이나 우리의 영혼은 영원하다
또한 재림 때에 그의 백성들에게 보상을 주신다. 예수님은 옛날의 이스라엘 처럼 우리가 얼마나 빨리 낙담하는지 알고 계신다. 그래서 예수님은 재림하실 것을 우리에게 깨닫도록 하시며 약속하신다. 또한 영광과 명예와 풍부한 보상이 그 때 주어질 것임을 약속하신다. 주님의 영광을 함께 누리고자 한다면 예수님께서 하셨듯이 그분의 고난에도 능히 동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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