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14] 감람산에서의 예언
예수님은 성전을 가리킴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라고 예언하신다. 이는 세가지 의미를 갖는다. ①예루살렘의 파괴, ②그리스도의 인격적 재림, ③세상의 종말이다. 이 예언대로 예루살렘은 파괴되었고, 세상도 종말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종말의 때에 끝까지 견디는 자는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고 구원을 얻을 것이다.
예수님은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경고하신다.(4절) 앞의 말씀은 예언이다.(1-2절) 사단은 예언의 가치를 잘 알고 있기에 사람들이 무시하도록 하기 위해 힘써 왔다. 예루살렘이 파괴되기 전 얼마나 많은 거짓 그리스도와 선지자들이 일어 났는가! 우리는 깨어 있어야만 한다. 아직 성취되지 않은 예언이 있을 것이다. 내 생각에 불가능해 보이는 예언이 있을 것이다. 예언을 말씀 위에 기초 세우지 않은채 사람들을 홀리기 위한 용도로 쓰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분명 인간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성취될 것이다. 먼저 메시아의 초림이 당시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사건임을 기억하며, 성경에 기록된 대로 인간의 몸으로 통치하기 위해 다시 오실 것을 믿어야만 한다.
이 종말은 세계의 평화와 행복, 번영을 약속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근과 지진, 재난, 환난, 미움"(7-9절)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세계적인 성결의 시대가 오리라고 기대하지 말자. 그러나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고 사단이 묶인 후에 신앙을 고백하는 모든 성도들이 진리를 받아들이고 거룩한 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그때에야 비로소 아무 흠도 없는 영광스러운 교회가 존재하게 될 것이다.(엡5:27) 우리는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해야 하지만(마28:20) 모든 인간이 회심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충실히 전파될 것이다. 마땅히 성도로서 종말을 소망해야하며, 이는 우리의 의무이기 때문이다.(14절) 우리는 이 말씀을 기억하며 핍박이 있다면 달게 받고, 그 핍박이 성도가 성도답지 못한 것일 때 우리는 주님앞에 회개와 기도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24:15-28] 멸망에 대한 예언
15절에서 "그러므로"로 시작하여 이 말씀은 앞의 내용과 이어짐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때에"(16절)는 이 말씀이 앞에서 말한 그 때를 일컫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먼저 앞의 내용을 예루살렘의 파괴의 때로 살피자. 도시가 포위된 상태에서 유대인은 고통의 시간을 겪었다. 많은 구약의 성도들은 성전이 앞으로 올 선한 일들의 그림자로 여겼다. 따라서 예수님이 오셨기에 그 그림자가 끝나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오래된 모세의 체계는 끝났다. 예수님은 몽학 선생이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던 시대가 끝났다고 말씀하신다. 매일 드리던 희생 제물, 해마다의 절기, 제단, 지성소, 제사장... 그리스도가 오신 이후로 이것은 더이상 아무것도 아니었다. 따라서 이것들은 매장되어야 했다.
또한 이는 세상의 종말에 대해서도 얘기한다. 이는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중단된다. 이는 단12장, 슥14장에도 예언이 되어있는 바다
보다 큰 관점에서 봤다면 이제 조금 더 개인적인 차원에서 살펴보겠다.
종말을 말씀하시며 우리에게 집 안에 있는 물건(17절), 밭에 있는 겉옷(18절)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라고 경고하신다. 우리는 아브라하믜 조카 롯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의 종말의 때에 나를 구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이다. 우리는 이 세상의 허무한 것에 가치를 쌓아두지 말아야 한다. 종말의 때를 바라보아야 한다. 또한 이 말씀은 위험에서 도망치는 일이 때로는 그리스도인의 능동적 태도가 될 수도 있음을 말한다.(16절) 물론 그리스도인은 필요하다면 진리를 위해 기꺼이 죽을 수 있어야 하며 그리스도를 사람들 앞에 고백해야 한다. 그러나 죽음이 아무런 유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면 자신을 안전을 도모하는 지혜도 필요하다.
또한 예수님은 "너희 도망하는 날이 안식일이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20절)고 말씀하신다. 물론 안식일이 무슨 요일인지가 중요하지는 않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을 여전히 말씀하신다.(히4:9) 오늘날 성도에게 안식일은 주일로 계승되어왔다. 우리는 마땅히 한 주 중 하루는 주님을 온전히 찬양하고 예배하도록 바쳐야 한다. 이는 주를 기뻐하는 자라면 당연히 바칠 수 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선택한 자를 늘 기억하신다.(22절) 우리는 성도로서 사단의 시험을 늘 겪으며 살아갈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신다. 그러므로 그 시련을 끝까지 주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하시고,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며, 그들의 영혼을 위해 성령으로 지키신다. 그러하기에 성도는 항상 안전하다. 우리가 넘어지지 않도록 하나님은 우리의 환난도 알아서 감해주신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서 단련시키시는 역사는 참으로 오묘하며 아름답다. 우리는 이를 마땅히 찬양해야 한다. 또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과 더불어 우리도 이에 미혹당하지 않도록 기억해야 한다. 이를 분명히 예수님은 경고하셨다.(23-26절)
그리고 여기서 우리는 예정이라는 주제를 자세히 살펴보게 된다. 물론 본문에서 직접적으로 이를 말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분명 "택하신 자"이라 표현하시는 것을 통해 이를 알 수 있다.(22절) 우리의 부르심과 택함을 확신하며, 이를 감사하며, 우리는 더욱 하나님께 부르짖고 복음을 전하며 살아야 한다. 우리는 바울이 그러했듯이 믿음, 소망, 사랑을 보고 하나님께서 택하심을 알 수 있으나(살전1:4;눅18:7) 그 누가 택함 받지 못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복음의 약속과 초대는 누구에게나 열려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그 전파에 정진해야하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것을 또한 말씀을 통해 배운다.(27절) 예수님은 사람의 몸으로 다시 이 땅에 오실 것이며, 그 때를 우리는 알 수 없다. 다만 갑작스러울 것이다. 우리는 보이는 것을 따라 사는 인생이 아니라, 믿음을 따라 살아야 한다.
[24:29-35] 그리스도의 재림
30절에서 "그 때에"라고 말하여, 예수님의 재림은 종말에 성취될 것임을 드러낸다. 예수님은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 다시 오실 것이기에 이는 자연스러운 의미이다. 물론 이 본문은 일차적으로 로마 군대가 예루살렘에 올 것임을 의미하지만, 이는 궁극적으로 이 시대의 종말을 예언하는 말씀이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는 특별한 영광과 위엄 가운데 오실 것이다.(29-31절) 슬픈 인간으로 오셔서 애통으로 생을 마친 예수님의 초림과는 분명 다르다. 다시 오실 때는 모든 왕의 권세를 가지고 온 땅의 왕으로 오실 것이며, 모든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심판을 받기 위해 그의 보좌 앞에 설 것이다. 성도는 최후의 날에 밝혀질 우리의 모습을 생각해야만 한다.
재림 때에 예수님은 그리스도인들을 먼저 돌보실 것이다.(31절)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보게 된다. 우리는 이러한 안전한 반석 위에 서야 할 것이며, 우리가 그 위에 서 있다면 우리를 항상 돌보실 것이다. 또한 그 날에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함께 모일 것이다. 이러한 성도의 연합은 우리에게 충만한 기쁨으로 다가올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성도들을 향해 복을 주시지만, 성도들은 그날까지 구별된 하나님의 자녀로서 남을 책임이 있다.(32-34절)
이러한 예수님의 예언은 분명히 이루어질 것이다. 많은 불신자들이 이를 믿는 우리를 조롱할 것이다. 우리는 방주를 만든 노아를 비웃었던 사람들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신앙이 사라진 세대 가운데에서도 마땅히 주의 말씀을 기억하고 이것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 가운데 살아야 한다.
[24:36-51] 종말의 시기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자기 자신이 언제 올지 모를리 없다. 그러나 이 말씀은 종말의 시기는 하나님 이외에는 아무도 알 수 없다는 강조이며, 또한 인간으로 온 자신에 대한 겸손이기도 하다.
여기서 예수님이 강림하시는 상태를 묘사한다. 그 때는 죄가 범람하는 시기일 것이다. 그리고 그 때에 아무도 모르게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믿는 자를 데려가고, 믿지 않는 자를 버려두실 것이다. 영생과 명예, 치옥과 멸시의 영원한 구별이 이루어 질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깨어있으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신다. 우리는 파수꾼처럼 언제나 경계하고 있어야 한다.(살전5:6) 예수님의 재림은 실제적인 것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도 실제적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오심을 기억해야 하며, 이를 통해 더욱 그리스도 안에 있도록 간구하고 이를 위해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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