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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8일 일요일

마태복음 23장

[23:1-12] 그리스도의 경고
 예수님은 이제 지상에서의 자신의 때가 거의 끝나가고 있음을 알고 계셨다. 그러므로 더이상 유대인 지도자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숨기지 않으셨다. 또한 여기서 질책하시는 예수님으이 모습이 나타나는데 그 질책은 잘못된 길로 가지 않도록 인도하시는 사랑에서 비롯된 것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거짓 교사의 직분과 행실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어찌되었건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신앙에 대해 가르치는 자리에 있었다. 브렌티우스의 말을 인용하자면 "그들이 모세의 가르침을 가르칠 때에는 들어야 하지만" 그 이상은 아니었다. 거짓된 행실과 거짓된 교리는 분명 따르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맹목적으로 따르거나 극단적으로 경멸하는 태도를 취해서는 안된다.
 바리새인들은 경문이나 유대인들이 옷에 달았던 성구를 적은 양피지 조각을 아주 크게 만들어 옷의 가장자리에 달았다.(민15:38) 이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늘 묵상하고 그 가르침을 따르라고 주신 말씀이었으나, 바리새인들은 자신을 자랑하기 위해 이를 행했다. 이를 예수님은 질책하신다. 우리는 영적으로 깨어있어야 한다.
 예수님은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고 가르치신다. 이는 또한 영적인 차원의 얘기다. 이를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바울은 디도를 "믿음 안에서의 자신의 아들"이라 불렀고 고린도인들에게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다"(고전4:15)고 말한다. 이는 우리의 영혼을 살려 새로운 피조물로 태어나게 하는 이가 오로지 하나님임을 가르치는 말씀이다. 또한 앞의 외식하는 바리새인을 꾸짖으시며 참된 성도는 겸손해야 함을 함께 가르치시는 말씀이다. 우리는 겸손해야만 한다.(벧전5:5) 이는 참된 회심에 관한 명백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23:13-33] 여덟가지 책망
 "화 있을 진저"로 말씀들은 시작한다. 여덟가지 책망을 차례로 살펴보자.
 ① 첫 번째는 바리새인들이 복음의 진행을 방해한 것에 대한 결과로의 "화"이다.
 ② 두 번째 "화"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탐욕과 자기 과장의 결과다. 이는 개역 성경에는 등장하지 않으나 영어 성경에는 등장한다. [Woe to you, scribes and Pharisees, hypocirites, because you devour widow's houses, and for a pretense you make long prayers; therefore you will receive greater condemnation.](NASB)(Living bible을 번역한 현대인의 성경에는 번역되어 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기도했다. 경건한 외양을 통해 영적인 지도자로 여기도록 하여 약자와 보호받지 못한 부인들이 자신들을 쉽게 믿도록 하고 그 재산을 가로챘다. 신앙을 팔아 돈을 번 자들이었다.
 ③ 세 번째 "화"는 파당을 좋아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열심에 대한 것이다. 그들의 열심은 사람들을 하나님께 인도하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당파가 높은 계층에 속하고 지지자들을 늘리기 위함이었다. 신앙적 열심이 하나님에 대한 사랑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분파주의에서 나온 것이다.
 ④ 네 번째 "화"는 맹세에 대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교리를 통해(성전보다 성전의 금을 중요하게 여겨 그 성전의 금을 두고 한 맹세가 더욱 중요하다고 하는) 제 3계명을 모욕하고, 물질을 지나치게 높게 두며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죄를 말한다.
 ⑤ 다섯 번째 "화"는 신앙에서 사소한 것을 진지한 것으로 높이고, 중요한 것은 사소한 것으로 여기는 죄다. 십일조보다 정의, 자비, 믿음이 중요하다.
 ⑥,⑦ 여섯 번째와 일곱 번째 "화"는 내면의 거룩함보다 겉을 개끗이 하는 외식에 대한 것이다.
 ⑧ 마지막 "화"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죽은 선지자들을 기억하며 거짓으로 존경을 표한 것에 대한 것이다. 그들은 선지자들의 무덤과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나 실제로 그들의 삶은 선지자들을 죽인 자와 같다. Berlenberger Bible의 서술을 살펴보자. "모세의 시대에 누가 좋은 사람이었는지 물어보라. 그들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될 것이다. 그러나 모세는 제외될 것이다. 그는 돌에 맞아야 당연하다. 사무엘 시대에 누가 좋은 사람이었느냐고 물어본다면 모세, 여호수아라는 대답을 들을 것이나 사무엘은 제외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시대에 누가 그런 사람이었느냐고 물어보면 그 답은 앞의 선지자들과 사무엘이 될 것이나 그리스도와 그의 사도들은 그 답에서 제외될 것이다."
 이는 우리 본성에 대한 묘사다. 또한 교회 역사에서 되풀이되어온 현실이기도 하다. 구약의 율법에서 지도자들의 죄가 더욱 질책을 받은 까닭은 자신 뿐 아니라 민족 전체를 악의 구렁텅이로 밀어넣기 때문이다.(렘22:1-7) 우리는 이 말씀을 묵상해야한다. 우리는 낮아질수록 높아질 것이다.

[23:34-39] 예수님의 마지막 공언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 대한 23장 말씀의 결론이다.
 하나님은 때떄로 불경건한 자들 때문에 크게 고통스러워 하신다. 하나님은 선지자들과 지혜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유대인에게 보내셔서 끊임없이 경고하셨다. 이것이 회심하지 않은 채 믿는다고 하는 자들을 대하는 일반적인 방법이다. 하나님은 끊임없이 경고하시고 부르신다. "돌이키고 돌이키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겔33:11)
 하나님은 그의 사자들이 받는 대접을 살피시고 갚으실 것이다.(마5:10) 사가랴는 죽어가며 "여호와는 감찰하시고 신원하여 주옵소서"(대하24:22)라고 말했다.(요아스 시대에 죽임을 당한 스가랴는 역대기에서 여호야다의 아들로 묘사되고, 예수님은 바가랴의 아들로 말씀하신다. 스가랴의 아버지는 두가지 이름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것이 타당하다. 유대인들은 두가지 이름을 가지는 것이 드문 일이 아니었다. 마태는 레위, 유다는 다대오라고도 불렸다.) 그 피에 대한 신문으로 예루살렘은 파괴당했다. 예수님께서는 이를 갚으신다. 공의의 하나님이심으로 우리의 고난을 견딜 수 있으며 위로를 받는다. 이는 나에게 상급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영원히 잃어버린 바 된 자는 철저히 자신의 잘못 때문임을 또한 말씀하신다.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않았도다"(37절) 그리스도께서는 구원받지 못한 많은 사람에게 동정과 자비를 품고 계시다. 인간의 실패는 인간의 책임이다. 잃어버린 바 된 자의 파멸은 그리스도가 그를 구원하려고 하지 않으셨거나 그들이 구원받지 않으려고 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의지가 약하여 그리스도께로 올 수 없었고 오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생을 얻은 자가 받은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나, 인간의 파멸은 전적으로 자신의 책임이다. 인간 안에 선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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