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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월 1일 화요일

요한복음 11장

[요 11:1-10] 나사로를 살리신 그리스도 1
 앞서 10장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신성을 드러내시자 유대인들은 분노했다. 뒤따르는 본문의 내용에서는 자신의 신성을 신적 능력을 통해 증거하신다.
 나사로가 병들었을 때(2절) 마리아와 마르다는 예수님께 치료해달라고 간청한다.(3절) 이 때 그 누이들은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는 자가 병들었나이다"라고 간청한다. 우리는 절망 가운데 주님께 의지하고 의뢰해야 한다. 겸손한 자세로 "보시옵소서"라고 부탁해야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 하나님을 '주'로 고백하는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에 확신을 가져야 한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근거가 됨을 기억하고 기뻐해야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힘들 때, 하나님을 의지하며 기도하기를 바라신다. 나는 그러나 지나치게 내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습성이 있다. 더욱 주님을 의지하고 간구하는 자가 되고 싶다.
 마르다와 마리아의 간청을 전하러 온 자에게 예수님은 나사로의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다.(4절) 나사로는 부활하여 예수님의 말씀은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가 죽었을 때, 마리아와 마르다는 크게 낙담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를 말씀하지 않으신 것은 그들이 더욱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인내하며 복종하는 자가 되기를 소망하시고, 그렇게 성장하도록 이끄시기 때문이다. 설령 하나님의 역사가 눈에 보이지 않는 힘든 때라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믿음으로 나아가겠다. 이어 예수님은 나사로가 병에 걸린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라고 말한다.(4절) 우리는 종종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영광을 드러내신다.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도, 하나님의 영광이 숨어있음을 기억해야겠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며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된다고 말씀하고 있다. 아버지와 아들은 함께 영광을 받으신다.
 예수님은 10장 후반부에 유대에 계셨다. 그곳의 원수들이 예수님을 잡으려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다시 유대로 다시 가자고 하신다.(7절) 때로는 하나님의 인도는 우리가 가기 꺼려하는 곳을 가리킨다. 그러나 그러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그 길로 내디뎌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지켜주신다는 사실을 믿고, 내가 해야 할 일을 해야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이 두려워 거부하게 되면, 실족하게 된다.(10절) 하나님의 뜻을 위해 힘써 일해야 한다.


[요 11:11-27] 나사로를 살리신 그리스도 2
 예수님은 10장에서 유대인들을 피해 도망가셨다. 이를 제자들도 알고 있기에 두려워했고, 그 두려움 때문에 예수님께서 나사로가 "잠들었"다는 의미를 깨닫지 못했다(13절). 뿐만아니라 그 의미를 다시 알려주셨을 때, 도마는 예수님과 같이 죽으러 가자 하며(16절),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깨우러" 가겠다는 말씀(11절)을 곡해한다. 우리는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자주 깨닫지 못하는가! 하나님께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에게 속삭이고 계시나, 이를 듣지 않는 것은 나 자신이다.
 나사로의 무덤은 베다니에 있었다.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매우 가까이(5리=2km) 있었다. 나사로가 죽음에서 부활하는 것을 통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만 자신을 계시하시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유대인들에게 부인할 수 없는 증거를 남기는 것이다. 하나님의 지혜는 이토록 크다.
 마르다는 예수님을 단지 선지자로 생각하고 있었다. 예수님께서 계셨다면 오라버니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 믿고 있으나(21절),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22절)  그러니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다시 살리리라 말씀하실 때도(23절), 마지막 날의 부활로 의미를 축소시키고 있다.(24절) 이에 예수님은 자신이 누구신지를 다시금 계시하시고(24-25절), 이를 믿느냐고 물으셨다.(25절) 마르다는 이에 대해 믿는다 고백하며(26절), 주님을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라 고백한다.(27절) 그러나 이후 39절에서 예수님이 무덤에 들어가시려 할 때, 이미 죽은지 한참 지났다고 말하는 모습에서, 마르다는 온전히 예수님을 믿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 구절은 어떤 의미인가?
 나는 모태 신앙이다. 어릴적부터 주일학교에서 나는 죄인이라는 것과, 하나님을 믿는다 고백해왔다. 그러나 이를 온전히 알기에 고백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에게 역사하셨고, 지금은 그때보다 조금 더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 지금 당장의 신앙 고백이 입술만의 고백이며, 온전히 하나님을 믿는 상황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마르다를 친절히 이끄신 모습을 보며 나의 믿음도 성장시키실 것을 기대한다.
 마르다에게 나사로를 살릴 것이라 계속 말씀하고 계신다. 이를 행하심으로 마르다의 믿음을 성장시키실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마르다는 반신반의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그 의심과 괴로움을 예수님께서는 없애지 않으셨다. 나의 믿음도 마르다처럼 성장시키실 것을 알기에 기쁨과 감사가 충만하지 않을 수 없다.


[요11:28-44] 나사로를 살리신 그리스도 3
 마르다는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이고자 한 사실을 알기에, 은밀히 마리아를 부르려 했다.(28절) 예수님이 오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마리아는 급히 일어날 수 밖에 없었고(29절), 마리아를 위로하던 유대인들은 그녀가 무덤에 가는 줄로 생각하고 따라 나섰다.(31절) 마르다는 마리아 혼자만 부르려 했으나, 수많은 무리가 예수님께 나아와 그의 기적을 보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지혜요, 섭리이다.
 예수님은 온전한 인간으로 오셨다. 그러므로 마리아와 유대인이 우는 모습을 불쌍히 여기고 괴로워하셨다.(33절) 나사로의 무덤으로 안내 받으셨을 때는 눈물을 흘리셨다.(35절)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이 나사로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를 알 수 있었으나(36절), 몇몇은 그런 예수님을 비아냥댔다.(37절)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섭리를 온전히 깨닫지 못해 "왜 이런 일이 닥쳐야만 하는가?"라고 종종 의문을 제기한다. 그러나 성도는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요13:7)는 말씀을 기억해야할 것이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비아냥, 불신을 듣고, 비통히 여기셨다.(37절)
 예수님은 충분히 나사로 무덤을 막고있는 돌을 말씀만으로 옮길 능력이 있으시다.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친히 우리에게 맡기신다. 그러므로 돌을 옮기라 말씀하셨다.(38절) 믿음이 부족한 마르다는 이미 나사로가 죽은지 오래되었다 항변하자(39절), 그녀의 믿음 없음을 질책하셨다.(40절) 사람들은 마르다의 물음을 듣자, 예수님의 명령을 행하지 않고 멈칫했다. 예수님께서 이에 대해 답변하신 후에야 돌을 옮겼다.(41절) 우리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에 얼마나 사소한 이유들로 순종하지 않고 있는가?
 예수님은 구하기 이전에 감사드렸다.(41절) 우리는 기도할 때, 내가 필요한 것만을 늘어놓고, 감사는 뒷전이지 않은가? 예수님은 우리에게 본보기가 되신다. 이어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42절)라고 말씀하시는데, 이로써 아버지와 아들이 "항상" 교통하고 있음을 사람들에게 알리셨다.(42절) 그리고 "나사로야 나오라"(43절) 명하셨다.
 나사로의 부활을 통해 우리를 죄에서 구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드러난다. 사탄의 권세에 의해 사망이 들어왔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사탄의 권세를 능히 깨뜨리시고, 마귀의 역사를 파괴하시어 우리를 구하신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대속하시어 그 값을 치루셨고, 동시에 우리와 하나가 되시어(요17:21;고전6:17) 우리의 부활과 생명이 되셨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에게는 옛 사람의 모습이 남아있어, 이를 풀어야 한다.(44절) 얼굴의 수건을 풀어주도록 사람들에게 명하셨다. 물론 성화의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돌보시지만, 우리를 그 영광스러운 사역에 동참시키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리고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이 놀라 어찌할 바를 모를 때, 나사로 얼굴의 수건까지 챙기실 정도로 꼼꼼하게 우리를 보살피고 계심을 돌아보며 감사하자.

[요 11:45-57] 그리스도를 두려워한 산헤드린 공회
 제사장들(사두개인, 행5:16)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은 것은 너무도 잘 알려진 바다. 나사로의 부활을 목격한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믿었으나, 그 중 누군가는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에게 이 사실을 고해바쳤다. 예수님꼐서 직접 이적을 이행하셔도 우리는 이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할만큼 완악하다는 사실을 살펴야 한다.
 48절의 말씀은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다.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이적을 보고 그를 왕으로 삼고자 했다.(6:15) 로마는 팔레스타인을 점령했으나, 유대인들의 종교를 인정하고, 종교 지도자들의 교회 재판을 허용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자신의 특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사로를 살리심으로 더욱 추종자가 늘어난 예수님이 왕이 된다면(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님을 가르쳤고(18:36), 그런 움직임을 회피했으나(6:15)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이를 인식하지 못한다.) 로마가 다시 쳐들어올 것임을 물론이며, 자신들의 지위가 사라질 것을 염려한 것이다.
 이에 대제사장 가야바는 예수님을 죽이자고 한다.(49-50절) 한 사람이 죽어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된다고 말한 그 말은, 예수님의 죽음이 가져오는 속량을 예언한 것이다. 사람의 마음에 많은 계획이 있어도 하나님의 뜻만이 온전히 서게된다(잠19:21)는 사실을 기억하자. 오늘날 한국 교회는 혼탁하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역사가 진행될 것을 믿고, 위로받자.
 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모의했을 때(53절), 예수님은 이를 아셨다. "그러므로"  드러나게 다니지 아니하셨다.(54절) 마귀는 하나님을 증오하며 항상 대적하려 하나, 그것조차 하나님의 영원하신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고 있음을 성경을 통해 확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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