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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8일 일요일

요한복음 10장

[요 10:1-10] 문이신 그리스도
 앞 장의 바리새인들에게 그들이 거짓 목자임을 밝히신다. "주여 내가 믿나이다"라고 앞서 고백한 맹인은 양이다. 그는 목자의 음성에 응답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주인이시며, 우리의 구원자이시다.
 양의 우리 안에 유대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과거 하나님을 믿었으며, 택함받은 민족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합법적인 문 - 예수님은 유대의 혈통으로 베들레헴에서 나셨다. 율법 아래에 나셨고(갈4:4) 팔일에 할례를 받으셨고(눅2:21) 정결 예식의 날에 성전에서 하나님께 드려졌다.(눅2:22) - 으로 그들에게 들어오신 예수님을 버리고, 다른데로 넘어가는 거짓 목자를 따랐다. 참 목자는 문지기를 통해 증거된다. 문지기는 직접적으로는 세례 요한을, 궁극적으로는 성령을 상징한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전달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참된 가르침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은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이다. 우리는 거짓 가르침을 따르지 않아야 한다. 항상 깨어있어야 한다. 그때 우리는 예수님으로 말이암아 구원받는다.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실 유일한 문이시다. 문을 통해 나가는 것을 수고라 할 수 있겠는가? 우리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얻는 것이다. 그러나 문이 없다면,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으면, 우리는 구원받을 수 없다.

[요 10:11-21] 선한 목자이신 그리스도
 에스겔이 예언한대로(겔 34장) 이스라엘 지도자(목자)들은 패악했다. 예수님께서는 이를 지적하시고, 자신이 (에스겔 예언의) 참 목자, 선한 목자이심을 알리신다.
 예수님은 목자로 오셨다. 양을 치던 아벨(창4:2)이 육을 따른 그의 형제, 가인에게 죽임 당한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죽임 당하셨다. 참 목자이신 예수님은 야곱(창33:13-14)처럼 양 떼를 돌보셨다. 모세처럼 양에게 물을 먹이고, 지키고, 인도하셨다.(출2:16,3:1) 이를 다윗처럼 자기 생명을 위태하게까지 하셨다.(삼상17:34-35)
 목자는 예수님의 중보적 직분을 가리킨다. 양 떼의 주인(아버지)으로부터, 양 떼를 돌보는 일을 위탁받으셨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자기 백성과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밤이 되어 목자가 양 떼를 문지기에게 맡길 때를 제외하곤 계속 돌보신다. 그리스도께서 계시지 않는 밤 동안에는 성령께서 우리를 맡아주신다. 그리고 목자는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을 신실하게 돌보신다는 사실을 알린다.
 주님의 백성은 양으로 비유된다.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가 모두 용서되었기에 우리는 순결하다.(마10:16) 그러나 양은 아무 힘이 없다. 우리는 양처럼 온순한지를 돌아보며 나 자신을 점검할 수 있다. 양은 보호받기 위해 목자에게 의지해야만 한다.
 예수님은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다.(11절) 예수님은 삯꾼이 아니라 목자셨다.(12절) 삯꾼은 자신이 일을 하면서 얻게 될 대가를 보고 행동한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지키고 인도하시는 것은 대가를 바라고 행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기에 하신 것이며,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여 스스로 행하신 것(18절)임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은 무력하셔서 죽임 당하신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서 그의 능력을 더욱 찬란히 보이셨다. 이어 부활하실 것임을 선포하셨다.(17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셨다. 자신의 목숨을 버림으로써 아버지를 향한 헌신을 완전히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예수님을 닮고 싶다고 고백한다. 나는 이웃들을 사랑으로 대하고 있는가? 참된 목자의 모습을 하고 있는가? 이는 이리가 올 때 내가 달아나는지, 양들을 계속 돌보는지를 통해 알 수 있다. 내게 그런 환난이 닥친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 정말 자신이 없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그리스도를 부인하지 않고,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자녀로서 살기를 희망한다. 내게 그럴 능력이 없음을 알기에 더욱 하나님께 구하고 매달려야겠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밖에도 인도해야 할 양이 있다고 말씀하신다.(16절) 유대인들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 가운데에서도 택한 백성이 있음을 알리신 것이다. 이를 신약에서만 계시하지 않으셨다. 이에 대해 트랩(Trapp)이 주석서에 남긴 말을 인용하겠다.
 "'너희가 그 땅에 들어가 각종 과목을 심거든 그의 열매는 아직 할례받지 못한 것으로 여기되 곧 삼년 동안 너희는 그것을 할례 받지 못한 것으로 여겨 먹지 말 것이요 넷째 해에는 그 모든 과실이 거룩하니 여호와께 드려 찬송할 것이며 다섯째 해에는 그 열매를 먹을지니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 소산이 풍성하리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레19:23-25)' 가나안에서 처음 3년 동안은 나무의 열매를 할례 받지 못한 것으로 여기고 먹지 말아야 했다. 따라서 구세주께서는 그의 공생애의 처음 '삼 년' 동안 그 땅에 복음을 심으셨다. 그러나 할례 받지 못한 것은 버려야 했다. 즉 할례 받지 못한 이방인들에게는 복음이 전파되지 아니하였다. 제 4년의 열매는 하나님께 드려졌다. 즉 그리스도께서는 그가 세례를 받으신 제 4년에 자기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그의 성령을 보내셨다. 이로 말미암아 그의 사도들과 다른 사람들은 약속된 땅의 첫 열매로 드려졌다. 그러나 제 5년에 그리스도께서 심으신 복음의 열매는 모두 먹을 수 있기 시작하였다. 왜냐하면 복음은 더 이상 유대교라는 좁은 울타리 안에만 갇혀 있지 아니하고, 믿음의 순종을 위하여 온 나라에 전파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요 10:22-42] 아버지와 하나이신 그리스도
 수전절(the feast of the dedication)은 성전이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의 우상 숭배로 말미암아 더럽혀진 후, B.C. 165년 경 유다 마카베오가 성전을 정화하며 제정되었다.
 '어린 양'을 죽이기 전 그 양은 그 떼로부터 며칠 동안 분리되어야 했다.(출12:3,5,6) 요한복음 10장에서 예수님의 공생애는 거의 끝나는데, '수전절'이 언급되는 이 때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떠나 "요단 강 저편으로"(40절) 가셨다. 지금까지는 이스라엘에게 자신을 나타내신 일에 몰두하신 예수님께서, 이제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 십자가에 자신을 바치기(dedicate) 위해 몰두하시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dedicate은 신약에서 두 번 기록된다. "이러므로 첫 언약도 피 없이 세운(dedicated) 것이 아니니"(히9:18),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dedicated)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히10:19-20) 이 두 구절에서 모두 'dedication'은 '피흘림'과 관련있음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은 자신이 메시야이심을 제자들과(1:41,49), 사마리아 사람들과(4:42), 눈먼 걸인에게(9:37) 밝히셨다. 그러나 유대인들과 유대 지도자들에게는 밝히시지 않으셨다.(24절) 이로써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오기 전까지 예수님을 합법적으로 붙잡을 수 없었다. 또한 예수님이 선지자들이 예언한 메시야이심을 그의 삶과 사역을 통해 풍부하게 보이셨음에도 유대인들이 믿지 못한 것을 보여주어, 예수님을 믿지 않는 그들의 책임을 두드러지게 보여준다. 이는 우리에게도 적용된다. 하나님을 증거하는 한없이 많은 요소들이 있으나 불신자들은 이를 보지 못한다.
 유대인들은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하게 하려 하나이까"(24절)라고 묻는다. 불신의 책임을 예수님께로 전가하고 있다. 불신자들에 대해 안타까워하며, 예정 교리를 비판하는 많은 사람들을 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한없이 계시하셨다. 이 사실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섭리와 예정을 비방해서는 안된다.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 양은 결코 멸망하지 않고 안전하다.(28-29절)
 예수님께서 "내 아버지"라고 말할 때는 중보자로서 말씀하시지만, "아버지"라고 말할 때는 절대적 신성의 관점에서 말씀하신다. 30절(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은 예수님이 완전한 하나님이심을 증거하는 말씀이다. 양을 보호하고 빼앗기지 않게 하는 아버지와 아들의 능력이 같음을 말씀하는 것이다.
 이런 예수님의 말씀을 유대인들은 신성모독이라 여겨 돌로 치려 했다.(33절)
 이에 34-38절에서 예수님이 변론하시는데 이에 대해 존 브라운의 논평을 인용하겠다.
 "주님의 대답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첫 번째 부분에서, 주님은 그가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르신 것을 근거로 유대인들이 그가 참람죄를 지었다고 고소한 것은, 설사 그가 자신에 대하여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보내신' 자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할지라도, 유대인들의 고소는 경솔한 것이었음을 보여주신다. 그리고 그 두 번째 부분에서는, 그들이 그가 자신에 관하여, 즉 그와 아버지의 친밀한 관계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을 모두 이상한 것으로 여긴다 할지라도, 그가 한 기적만큼은 믿을만한 것임을 보여준다.
 첫번째 부분의 논증은 시편 82:6을 근거로 한다.("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 하였으나") 이 말씀은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에게 법을 집행하는 일에 있어서, 그의 대리인으로서 행하도록 위임하신 유대의 방백들에게 한 말씀이다. 이들은 하나님을 대신해 심판하였고, 이들이 율법에 동의하여 내린 선고는 하나님의 선고가 되었고, 이들의 심판은 하나님의 심판이 되었으며, 이들에게 반역하는 자는 하나님께 반역하는 자로 여겨졌다. 법을 집행하는 자들이 '신들'과 지존자의 아들들이라 불린다면, 이를 근거로 예수님을 신성모독으로 고소할 수 없다.
 두번째 부분은 37-38절에서 대답하신다. '내가 아버지와 하나'라고 말씀하신 것은 능력과 작용에 있어서 하나라는 뜻이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행한 기적들로 하나님의 능력을 보였음을 입증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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