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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18일 토요일

요한복음 18장

[요 18:1-11]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셨다 (1절). 속죄 제물로서 진영 바깥에서 죽임을 당하시기 위함이다(레4:12,21). 이 장면을, 다윗이 잘 예표하고 있다. 그는 절친인 아히도벨에게 배신당했을 때, 눈물을 흘리며 기드론 시내(1절)을 건넜다 (삼하15:23,30,31). 제자들도 주님을 따라갔다. 그리고 주님이 원수들의 손에 자신을 자발적으로 넘긴 것을 보게 하셨다. 주님은 우리가 원수들에게 저항하기보다는, 하나님의 뜻에 온유하게 따르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의무임을 가르쳐주고자 하셨다.
 겟세마네 동산과 에덴동산은 대조된다. 에덴동산에서는 모든것이 즐거웠으나, 그곳에서 낮에 아담은 죄를 짓고 타락하여 사탄 앞에 엎드렸다. 그리고 아담은 숨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은 밤에 고난 받으셨으나 승리하셨다. 군병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시자 그들은 그리스도 앞에 엎드렸다 (6절). 그리고 하나님이 아담을 찾으신 것과 같이,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은 하나님을 찾았다.
 예수님을 잡으러 온 군병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으나 (3절), 예수님께서는 친히 드러내셨다 (5절). 재차 드러내셨다 (7절). 그러나 그들의 제자들은 지나가도록 용납하라고 요청하신다 (8절). 예수님께서는 끝까지 그의 제자들을 사랑하신 것이다.


[요 18:12-27] 안나스 앞에서의 그리스도
"나도 자서전 비슷한 것을 여기에 쓰고 있지만, 과연 나 자신에 대해서 정말 솔직하게 썼을까? 역시 자기 자신의 추한 부분은 건드리지 않고, 많건 적건 간에 자신을 미화해서 쓴 것은 아닐까? 나는 이 <라쇼몽> 부분을 쓰면서 그 점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 구로사와 아키라, 자서전 비슷한 것 p.319.
이 장면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다. 그리고나서야 닭은 울었다 (27절). 베드로는 자신이 예수님을 부인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 때 깨달았을 것이다. 예수님의 예언을 돌이키며 말이다. 위 글을 인용한 것은 우리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부인하면 좋을 때가 종종 있다. 그때 나 자신을 속여, 미화시킬 수도 있다. 그런 약한 존재가 바로 우리 인간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 26:41)"고 말씀하셨다.
반면 본문의 예수님은 베드로와 너무도 다르다. 자신있게 진리를 얘기하며, 감추지 않으며, 떳떳하다.
왜 우리는 기도하는가라는 질문 앞에 항상 서게 된다. 이 본문은 그 질문에 답을 준다. 우리는 예수님과 달리, 동시에 베드로와 같이, 너무도 연약하여 쉽게 하나님을 부인한다. 말로서 할 수도 있지만, 행동으로서 부인할 수도 있다. 그때 연약한 우리는 기도로 하나님께 의지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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