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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8월 7일 수요일

마태복음 4장

[4:1-11] 시험 (막1:12-13;눅4:1-13)
 예수께서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시는데 그 길을 이끄시는 분은 성령님이다. 마귀는 성도를 시험할 수 있으나 그 모든 것도 성도를 연단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음을 우리는 항상 기억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범사에 감사해야한다.
 광야로 가셔서 예수님은 사십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셨다. 그 때 사단은 예수님의 배고픔, 과시욕, 명예와 같은 것 등을 이용해 시험했고 예수님은 친히 이겨내셨다.
 여기서 또한 하나님에 대한 계시가 우리에게 드러난다. 우리는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아야 한다.(7절) 어찌 미천한 피조물로서 그분을 시험하겠는가! 그런 교만함과 방자함이 있을 수 있겠는가! 가끔 우리의 필요에 의해 하나님을 시험하라고 가르치는 이들을 본다. 우리가 배울 것은 겸손이며 예배의 자세이지 결코 교만이 아니다. 또한 하나님은 충분히 경배받을만한 존재시다.(10절) 모든 영광과 거룩과 사랑과 지혜와 능력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예배받으실 분이며, 그분을 찬양하는 것은 우리의 목적이다. 우리는 그분을 섬겨야 한다. 그런데 그분을 경배하기 위해 우리는 그분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을 배워야 한다.(4절) 그리고 우리의 삶은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과 부활을 통한 죄사함과 승리에서 새롭게 태어난다. 그렇지 않는다면 우리는 죽은 자이다.
 여기서 살펴볼 수 있는 바는 먼저 사단의 시험이 실재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참된 성도에게는 사단의 시험이 있을지라도 주님께서 승리를 확정하셨다. 그러나 우리 자신이 너무 연약하기에 항상 우리는 그 세력에 대항하기 위해 주의하며 기도해야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말 것은 승리가 보장되어있기 때문이다.
 또한 사단에 대항하기 위해 우리는 성경을 배워야한다. 그러나 '정확히' 배워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시험하는 마귀도 성경을 근거로 유혹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경을 바르게 읽어야 한다. 그러나 성경을 하나님의 계시로서 이해하기 보다는, 개인의 깨달음을 위해 오용하는 경우를 얼마나 자주 보게 되는가! 우리는 정확한 계시를 이해하기 위해 열심히 규칙적으로 읽어야하며, 바른 이해를 위해 성령께서 지혜 주시기를 기도해야한다.
 사단의 시험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 세상에서의 부귀영화를 위해 하늘의 상급을 포기하라고 꼬시고 있다. 우리는 그 유혹에 너무 쉽게 넘어간다. 우리의 본성이 악하고 약하기 때문이다. 물론 세상의 부귀영화는 너무도 달콤하며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더욱 크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하게 하나님이 먼저임을 기억해야한다.
 그 때 우리는 능력있는 친구되신 예수께서 우리의 갈구를 지나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인간이시기에 우리의 그런 약함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신다. 그런 예수님이 있다는 사실에 더욱 감사가 충만하게 된다.


[4:12-25] 그리스도 사역의 시작 (막1:14-15;눅4:14-15,눅6:17-19)
 예수께서는 요한의 잡힘을 들으시고 갈릴리고 물러가셨다.. 요한의 투옥 소식을 들으실 때까지는 나라 안으로 들어가시지 않으셨는데,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이 주의 길을 예비하도록 시간을 주셔야 했기 때문이다. 세례 요한이 잡혔다는 소식을 듣자 곧 나라 안으로 들어가셨다. 이는 자신의 안전을 강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례 요한의 부족함을 보충하며 요한이 닦은 좋은 기초 위에 자신의 사역을 세우시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은 인도자 없이 그의 교회를 버려두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일을 스스로 하실 수 있지만, 이토록 우리가 그 영광스러운 길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신다. 우리로 하여금 주님의 일에 참여할 수 있는 은혜를 베푸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대단한 일은 아니고,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주께서 주님의 나라의 확장이라는 영광스러운 일에 내가 참여할 수 있도록 하셨음을 기억하고 감사하자.
 지역에 대해 잠깐 언급을 하겠다. 나사렛은 갈릴리 지방의 수도인 세포리스 근교에 자리잡고 있었다. 가버나움은 갈릴리 호수 북동편에 면해 있었고 어업을 주업으로 하는 큰 도시였다. 가버나움은 스블론이 아니라 납달리의 경계선에 있었는데, 마태가 스블론을 언급한 이유는 4:15에서 인용되고 있는 이사야 9:1에 둘이 함께 언급되기 때문이다.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사9:1))
 예수님은 촌스러운 지방이라 멸시받던 갈릴리에서 복음을 전파하셨다. 이사야의 에언을 살펴보자.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16절)다고 말한다. 이는 그 멸시받던 갈릴리에 예수께서 가장 아름다운 복음을 전하심으로 성취되었다.
 예수께서 처음으로 가르치신 것은 무엇인가? "회개하라"였다. 우리의 신앙은 회개로부터 시작한다. 회개는 죄에 대한 마음의 변화를 통해 이루어지며 경건한 마음으로 슬퍼하고 겸손함을 나타내는 변화이다. 지속적으로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행20:21)을 일으키지 못하는 것은 그 어떤 것도 기독교 교훈이라 할 수 없다. 우리의 부르심과 거듭남은 모두 성령의 사역이다. 우리는 이를 바탕으로 회개함으로써 주의 자녀라는 축복에 이른다. 늘 회개하자. 나의 본성은 악한 것 중에 악하다.
 또한 예수께서 처음으로 하신 사역은 무엇인가? 그것은 말씀 전파였다. 말씀 전파는 너무도 영광스러운 일이다. 예수께서 열두 제자들에게, 바울이 디모데에게 명령하고 부탁한 임무다. 그것은 항상 하나님께서 영혼의 회심과 교회를 위해 어떤 것보다 즐겨 사용하시는 수단이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그 들음에서 회개하여 믿게 된다. 나는 설교자의 가르침을 기뻐하며 말씀 읽는 것을 송이꿀처럼 달게 여기는가?
 당대 사회에 어부는 갈릴리 산업 구조의 중추적 역할을 했으며, 경제적으로 비교적 유복한 편이었다.(토지를 경작하는 수많은 농노에 비해 훨씬 나은 수준이었다.) 어부들이 갈릴리 주민의 평균치보다 소득이 높았던 것을 고려할 때 야고보와 요한은 좋은 직업을 포기했음을 알 수 있다. 그 뿐 아니라 부모와 가업을 일시에 버렸다. 이러한 행위는 그들 사회에서 불명예로 간주되기 쉬웠다. 하지만 이런식의 갑작스런 결별이 곧 철저한 제자도의 증거임을 말해 주는 유사한 이야기들이 유대인과 헬라인 사이에 많이 퍼져있었다.(갈릴리는 무역이 발달한 도시로 헬라화된 도시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어부들은 여전히 천대받고 가난한 자들이기도 했다. 그들보다 더 비천한 자들이 있었던 것이지 그들은 여전히 가난하고 비천한 자들이었다. 그런이들을 예수께서는 제자로 택했다. 왜냐하면 우리의 신앙은 세상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며, 세상 모든 사람들은 가난한 자들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상에 아부하지 않고 세상과 반한다. 그럼에도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까닭은 우리의 믿음이 하늘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연약한 우리를 통하여 변화되고 복음이 전파된 것은 약한자가 강함을 드러내고 강한들이 약함을 나타내는 것이다.(로마의 황제, 화려한 사원을 가지고 있던 이교의 사제들은 몰락했으며, 그 누구보다 부귀영화를 누렸던 교황을 반하는 종교개혁은 성공을 이루었다.)
 그리고 우리의 예수를 따르는 모습은 어떠해야하는지 보여준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면 주를 단번에 따라야 한다. 망설이지 말아야 한다. 세상에 미련을 갖는다면 롯과 같은 절름발이 신앙만을 지닐 뿐이다. 이 세상에서 우리는 나그네일 뿐이기 때문이다.
 23절부터는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며 이적을 행하신 것이 나온다. 예수님의 이적은 병과 약한 것을 고치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더욱 강한 이적을 보이실 수도 있었음에도 이런 약한자들을 위로하시는 일을 먼저 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동정하시기 때문이다. 자비와 친절이 무한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하실 만큼 능력이 있으신 분이라는 사실도 우리는 기억한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마음과 능력이 있기에 우리의 유일한 중보자 되신다. 나의 모든 어려움을 주께 맡기자. 주께서 나를 위로하실 것이다. 그리고 또한 내가 받음 기쁨(23절에서는 천국 복음을 듣고 병고침을 당한 기쁨)이 있다면 그 기쁨을 더욱 알리자. 다른 이들도 그 기쁨에 동참할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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