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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8월 16일 금요일

마태복음 5장 38-48절(사랑에 관한 기독교의 율법)

[5:38-48] 사랑에 관한 기독교의 율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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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42절)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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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인에게는 보복할 권리, 물건에 대한 권리, 자기 시간을 마음대로 사용할 권리, 자기 돈을 자기 마음대로 쓸 권리도 없다. 우리는 모든 소유물을 주님으로부터 위탁받은 자이기에 예수님처럼 다른 사람들을 돕는 일에 자기 소유물을 써야한다.
 마벨 윌리엄슨(중국 선교사) - 『Have we no right?』中 : "여러분도 잘 아시는 것처럼 비참함을 먹는 것(역경을 견뎌낸다)과 손실을 먹는 것(자신의 권리가 침해당하는 것)은 크게 다릅니다. 비참함을 먹는 것은 상당히 쉽습니다. 전도단과 같이 나가 일할 장소를 향해 오십리를 걷는다든지, 천막치는 일을 돕는다든지. 그것은 생각보다는 그다지 힘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른일, 제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다른 일이 문제거리로 등장했습니다. 저는 '손실을 감수해야'했던 것입니다. 저는 저의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저는 아무런 권리도 가진 것이 없음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권리를 모두 포기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이 일이 가장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바울도 그러했다.(고전9:4-6,12,19) 이 일은 어려우나 우리는 마땅히 해야만 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것은 우리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함이 아니라 은총을 베풀기 위함이다. 우리는 그토록 희생적인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는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로부터, 십자가를 어떻게 질 수 있는지에 관한 고민으로부터 출발해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가 거룩해지려 노력하면서 타자의 거룩을 요구하는 것이 바른 태도가 아니다.
묵상 : 어제 기숙사 발표가 났다. 본원 캠퍼스 기숙사에서 떨어진 사람이 55명 있다는데, 내가 그들 중 한 사람이 되었다. 아직 석사 1년차인데 벌써 이러다니. 너무 짜증이 났다. 이미 학부 때 기숙사를 수도없이 많이 옮겨서 이사에는 이골이 났기에 더더욱 그랬다. 그런데 왜 하필 많고 많은 사람 중에 내가 걸렸을까? 단순히 우연이기에 무시하고 넘길 것인가? 그 가운데 하나님의 뜻이 계시는 듯 하다. 교회를 옮길까에 대한 고민도 어느 정도 있었는데 그엥 대한 응답일 수도 있는 것이고, 또 여기서 말하듯 나의 권리가 없음을 다시금 상기시켜주는 것일 수도 있다. 여하튼 후자에 조금 더 집중을 해보자. 사실 알고보면 내가 이 곳에 계속 살아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권리가 아님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사실을 듣고 짜증이 났던 사실은 그것이 내 당연한 권리라고 여겼음을 다시금 깨닫는다. 나는 이토록 간사한 존재였던 것이다. 구원받은 성도는 그리스도인이다. 그리스도를 닮아야 한다. 그리스도는 정말 미천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셔야했다. 그런데 나는 왜 그러한 그리스도를 닮기는 커녕 내 욕심을 이루지 못할 때 분개하는가. 앞으로 변화되어야 할 것이 너무도 많다. 그럼에도 감사한 것은 이런 일을 통해 나로 하여금 깨닫게 하신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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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47절)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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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는 기독교인의 사랑을 논한다. 본문은 기독교 윤리의 핵심을 하나님의 성품에서 찾는다. 친구를 본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이 사랑하는 것을 본받으라고 하신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 반드시 우리는 이런 사랑을 해야 한다.(45절) 또한 그 사랑은 차별없는 사랑이며, 행위로 나타나야 한다.
 신약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에 관해 얘기할 때 항상 십자가에 관한 이야기가 뒤따른다.(요3:16;롬5:8;갈2:20;요일4:10) 이런 하나님의 사랑이 경이로운 것은 예수께서 고난을 당하셨기 때문만이 아니다. 자신에게 적대적인 죄인을 위하여 고난을 받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롬5:7,8),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고(요8:43), 성령을 받지 못하고(요14:16,17), 그의 율법에 순종하지도 못하고(롬8:7,8), 그의 가르침을 이해하지도 못하고(고전2:14), 죄를 끊지 못하고 있을 때(벧후2:14)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입증되었다.
 이 사랑은 나의 힘으로 발현할 수 없다. 오직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 속에서 활동하시며 주의 사랑을 간직하실 때에만 이 사랑을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우리는 간구해야 한다. 사랑은 좋아하는 것과 달리 의지의 문제이기에, 하나님께서는 명령하셨다. 또한 사랑이 의지의 문제이므로 그 의지를 주님께 복종시킬 수 있다면, 사랑은 충분히 가능하다. 또한 이 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문제로, C.S. 루이스는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는 것처럼 행동하면, 곧 그를 사랑하게될 것이라고 가르친다.
묵상 : 우리 안에 그리스도께서 계실 때, 우리는 사랑할 수 있다. 그 사랑은 성도 간에만 존재하는 사랑이 아니며 모든 사람을 향한 사랑이다. 하나님께서 그러하셨듯이 말이다. 우리는 그 사랑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사랑을 요구하시나 우리의 본성은 끊임없이 부딪친다. 이러한 본성을 깨기 위해 나는 충분히 기도했는가? 하나님께서는 많은 상황, 시험을 통해 훈련시키실 것이다. 나는 사랑보다는 분노와 짜증이 더욱 익숙한 자다. 더욱 하나님 안에서 사랑을 충만히 경험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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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절)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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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문장은 산상수훈의 절정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의 본질이며, 기독교 복음과 성경 전체의 핵심이다.
 신구약에서 '온전함'이라 번역된 단어를 살펴보자.
 1) tam, tamim(결점이 없는, 흠이 없는)(출12:5;출29:1;벧전1:19;엡5:27) : 소극적 의미
 2) shalem(온전한, 완전한) : 적극적 의미의 온전함. 샬롬. 안정, 건실함, 행복 등
 3) teleios : 출항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끝낸 배나 전투 준비를 완전하게 갖춘 군대
 즉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의는 완전한 의다. 인간의 힘으로 닿을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노력을 완전히 포기하고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완전함을 받아야만 하는 것이다.
 시편 18편에서 하나님의 온전함과 인간의 온전함을 이야기한다. 이 두 온전함 모두 하나님께서 책임을 지신다고 얘기한다. 어떤 방법으로 이를 성취하시는가?
 1) 죄 때문에 성부께서 성자를 세상에 보내셔서 다른 사람들의 죄 때문에 죽게 하셨으며, 죄에 대한 형벌을 담당하게 하셨고, 죄인을 정죄하는 모든 의의 요구들을 무효화 시킴으로 거룩을 완전하게 하셨다.(히10:14)
 2) 현세에서 더 완전하게 변화시키신다. 아직 우리는 불완전하므로 완전함을 얻기 위해 나아가야 한다.(빌3:12)
 3) 그러나 이런 성화를 통해 죄가 없는 순간이 우리에게 오지 않는다.(요일1:8) 성도들을 완전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은 죽는 순간 성도들을 완전하게 하신다. 그러므로 바울은 죽는 것이 유익하다고 말한 것이다.(빌1:21,23)
 하나님께서는 중단없이 이를 계속 하실 것이다. "너희 속에 찬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1:6) 예수님께서는 믿는자를 결코 떠나지 않으시며, 우리를 예수님에 이르기까지 이끄실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처럼 변화시키려는 하나님의 목적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신다.
묵상 :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말은 우리의 온전함을 약속하시는 것이다. 이는 우리의 힘으로 이를 수 없기에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임을 약속하는 것이다. 구원은 나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나는 아직도 부족하여 늘 넘어진다. 그러나 그런 나를 포기하지 않고 온전함으로 이끄신다는 사실은 얼마나 큰 은혜인가! 물론 성화가 이루어지는 과정에는 나의 실천이 분명 필요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내 자발적인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시험과 상황 속에서 몸부림치며 변증법적으로 이루어지는 과정이라 믿는다. 그 과정 속에서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더욱 깊이 깨닫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즐거움과 그 뜻을 반하는 고통을 겪기에 더욱 하나님을 좇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깨달음과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현실에 대한 깨달음), 믿음을 통한 의지의 선회 등을 통해 이를 이룰 수 있다. 이는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지며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성화를 겪으면서도 여전히 죄인인 나의 모습을 바라볼 때에 우리에게는 얼마나 큰 절망이 있는가! 그 가운데 온전함을 주신다고 약속하신다는 것은 얼마나 큰 위로인가! 더욱 주의 말씀을 붙들고 그분을 좇아가기를 더욱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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