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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절)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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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선 무엇보다도 주기도문의 형식을 살펴보자. 먼저 하나님의 이름, 나라, 뜻을 간구하며, 그 다음에 우리에게 주시고 인도하시고 구하기를 간구한다.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할 때 '나'보다 '아버지'가 먼저 와야한다. 기도란 하나님의 뜻을 자기의 뜻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소원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먼저 생각하고 역사 속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목적을 증진시키는 일을 먼저 생각해야한다.
2) 다음으로 기도에 드러난 특권을 살펴보자. 이 말씀은 누가 기도할 수 있으며 기도하는 자에게 어떤 특권이 주어지는가를 보여준다.
기도는 '아버지'로 시작한다. 이 호칭은 예수님으로부터 시작되었고,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 항상 이 형식을 사용하셨으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와 같은 형식을 사용해서 기도할 권리를 부어하셨다.
구약의 어떤 유대인들도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라 호칭한 적이 없기에 이는 충격이었다. 희랍 사상에서는 제우스를 아버지로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인간을 다스리는 왕을 표현한 것으로 비인격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구약에 쓰인 '아버지'라는 단어는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관계를 제시한 인격적인 것이다.(출4:22;시103:13;사64:8;렘3:19,20) 그러나 여기서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라 표현한 것은 찾을 수 없다.(이 본문들의 요점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맺은 가족 관계에 충실한 생활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아버지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은 유일한 경우는 십자가 위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왜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외치신 것이다. 이 기도는 예수님께서 인류를 위한 속죄 제물이 되셔서 아버지와의 관계가 잠정적으로 끊어진 순간 예수님의 입에서 억지로 터져나왔던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라 표현하여 불경스럽고 하나님을 모독한 인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아버지가 아니다. 독특하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시며 또한 그리스도를 믿고 믿음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들만의 아버지이시다. 요8:42-44에서 유대인들에게 '너희 아비 마귀'라 표현하심을 통해 이를 단적으로 드러내신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자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거듭난 자들만이 지니는 특권이다. 한때 어두움의 자식들이었다가 빛의 자녀가 된 자이며(엡5:8), 허물과 죄로 죽었다가 그리스도 안에서 산 자들이며(엡2:1), 분노와 불순종의 아들이었다가 사랑, 믿음, 순종의 자녀들이 된 자다(엡2:2,3).
또한 그 아버지를 '아바'라 호칭한다. '아바'는 아람어로 아버지의 애칭이다. 어린 아이가 부르는 '아빠'라는 의미다. 우리에게 하나님을 아빠로 부를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지기에 때로는 거실의 창문을 깨뜨린 어린아이처럼 슬픈 모습으로 나아갈 수도, 아빠 무릎에 앉아서 재롱을 피우듯 편안한 마음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하나님은 나의 아빠이기에 어린 나를 도와주실 것이다. 영적으로 생활하는 법을 가르쳐 주시며 내가 쓰러졌을 때 일으켜 주시며 내 걸음을 안전하게 인도해 주실 것이다. 부모는 어린 자녀들을 돌볼 의무가 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도하고 가르치시며 양육하실 것이다. 그 동안 그 어떤 세력도 하나님의 목적을 방해할 수 없다.
3) 앞에서 '아버지'가 의미하는바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이번에는 간구의 내용을 보다 자세히 살펴보자. 첫번째 간구는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기도다. '거룩히 여김을 받은'이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거룩한', '거룩하게 하다'라는 뜻이다. 이는 통상적으로 어떤 것을 하나님이 쓰실 수 있도록 구별해 놓는 것을 지칭한다. 성전 안에서 사용된 것은 하나님이 사용하시도록 구별된 것이며, 마찬가지로 성도들도 거룩한 자들이다.
또한 이 간구는 십계명의 제 1 계명의 양식을 따라 형성된 것이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에 해당하며,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는 "하나님 외에는 다른 신이 없다"는 명령에 상응한다. 즉 이 간구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여, 내 첫 번째 소원은 모든 일에서 당신이 우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입니다."라는 기도다.
특별히 여기서는 "이름"이 강조된다. 즉 이 기도는 하나님의 이름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성품과 관련되어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이름은 무엇인가?
① 엘로힘 : 창세기 1:1에 나오는 창조주 하나님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창조주로 경외하며 영화롭게 해 드려야 한다.
② 엘 엘리온 : "지존자이신 하나님"을 뜻하며 하늘과 땅의 통치자이심을 드러낸다. 멜기세덱이 아브람을 축복하는 장면(창14:18,19), 하나님께서 우주를 다스린다는 모세의 찬송(신32:7,8)에 드러난다. 우리는 우리의 삶과 다른 많은 인간들의 삶 속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주권을 의심한다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못하는 자다. 우리가 모든 일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며, 우리를 보호하시며, 모든 피조물과 그들의 행위를 보호하시고, 다스리시는 사역을 계속하신다고 생가갈 때, 우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③ 여호와 : 타락한 아담과 하와에게 에덴동산에서 구속을 약속하신 분, 노아에게 방주에 동물들을 넣도록 말씀하신 분(창7:16)이 여호와시다. 특별히 여호와 이레 : "주님이 공급하실 것이다"를 살펴 보자. 구속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하나님의 인치심을 받게될 때 개인 적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을 입어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우리를 죄의 노예 상태에서 건져주시며, 우리를 사랑 안에서 자신에게로 이끄시는 분으로 여기는 것이 여호와를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⑤ 아도나이 : "주"라는 뜻으로 그분은 우리의 지극히 높으신 충성을 받으시는 분이다. 그분이 내 삶을 인도하신다고 인정할 때 우리는 그분을 주로서 거룩하게 해 드리는 것이다.
⑥ 주 예수 그리스도 : 그 분 안에 모든 다른 이름들이 종합되어있으며 하나님의 성품이 명백히 나타나 있다.
그분은 알파와 오메가며, 태고 이전부터 하늘 보좌 위에 앉아 계신 분이며, 마굿간에서 태어난 베들레헴의 어린 아이며, 나사렛 예수이며, 기묘자, 전능하신 하나님, 영원하신 아버지, 평화의 왕, 우주의 정의로운 심판자, 우리의 반석, 망대, 길, 진리, 생명, 빛이시다. 또한 선한 목자이며 만왕의 왕이시고, 미쁘신 자, 사랑이시다.
이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시고, 나으이 하나님이시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모든 세대의 기독교회와 함께 소리를 높여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할 수 있다.
묵상 : 우선 순서를 보자면 앞에서는 율법에 대해 새롭게 가르치시며 잘못된 적용을 하는 바리새인들을 비난하셨다. 그러하기에 그들의 외식하는 기도를 비난하셨다. 이제 참된 기도가 무엇인지 배워야만 한다. 앞에서는 부정적인 측면에서 가르치셨다면 이번에는 긍정적인 측면에서 어떻게 기도해야하는가를 마땅히 가르쳐주시는 것이다.
창조주이시며 구속주이신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 아빠라 부를 수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큰 은혜인가! 또한 그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리기 위해 우리에게 가족이라는 제도를 주신 계획은 얼마나 놀랍고 위대하며 자비로우신가! 기도란 우리에게 너무 큰 특권이다. 기도하는 것을 들어주신다는 복. 그런 아버지를 의지하기에 더욱 아버지의 말씀대로 자라고 그 아버지를 본받는 믿음 안에서 자라고 싶다. 이를 위해 더욱 주께 기도하며 나아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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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절)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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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이 두 번째 간구도 첫 번째 간구와 관련되어 있다.
하나님 나라의 시제는 언제인가? 성경의 관점은 과거, 현재, 미래라는 세 단어로 표현할 수 없다.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 나라는 과거적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인간과 역사를 다스려 오셨기 때문이다. 또한 현재적이며 미래적이다. 하나님은 오늘날도 통치하시며(눅17:21) 앞으로도 계속 통치하실 것이기("주의 나라가 임하옵시며")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과 비교할 수 없이 우월한 나라다. 이 세상의 나라의 운명은 항상 쇠하게 되어있다. 이는 다니엘서에 잘 묘사되어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 역사를 주관하신다. 심지어 현재 하나님께 반역하는 자들에 대해서도 주권을 행사하신다. 하나님 나라는 도처에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마6:25-34)
세상에 임한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께서 인류로 하여금 하나님께 순종하도록 만들고 역사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에 순응하도록 만들 때 발견된다. 구약시대에서도 이 일은 시작되었다. 하나님은 나단을 통하여 다윗에게 자손을 통해 네 나라를 영원히 보전하고 견고하게 하신다고 약속하셨다.(삼하7:11,12,16) 다윗은 이 말씀이 인간의 행위를 이루어질 수 없음을 깨닫고 이 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이후 다윗의 집을 세우시겠다는 약속은 점차 확장되고 반복되어, 선지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인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에서 온 땅을 통치하시는 때를 기대하게 되었다.(사24:23;슥14:9,16)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공생애를 시작하셨을 때 하나님의 나라는 또 다른 의미에서 가까이 임한 것이었다.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인류에 찾아온 것이며, 그러하기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가운데 있다"고 말씀하셨다.
또한 성도의 삶 속에 성령이 역사하시는 것도 또한 다른 의미에서 사람들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찾아온 것을 의미한다.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를 "성령 안에서의 의와 평강과 희락"(롬14:17)라고 내면적으로 묘사했다.
19세기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온 세상을 정복할 때까지 확장될 것이라는 견해가 보편적이었다. 그러나 이것의 허구성은 역사를 통해 충분히 드러났다.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세계의 많은 부분들이 결코 개종하지 않을 것이며 악마의 자식들이 끝까지 교회 안에 머물러 있을 것이며 예수님 자신의 통치가 세상 끝날에 가서야 완전히 이루어질 것이며 예수님의 능력이 나타나야만 계속되는 인간들의 적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나라가 확립될 것이라 가르치셨다. 마태복음 13장에 나타나는 하나님 나라의 비유를 통해 이러한 교회사의 과정을 미리 보여주셨다. 씨뿌리는 자의 비유의 의미는 무엇인가? 교회의 시대는 씨를 뿌리는 시대로서 오직 하나님 나라의 일부분만이 열매를 거둘 것임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 다음의 알곡과 가라지 비유에서 교회 안에 하나님의 참된 자녀와 악마의 자녀가 공존한다는 사실도 보여주셨다. 다른 모든 비유들도 비슷한 논점을 보인다. 이 시대에 하나님 나라의 확장은 항상 악마의 영향력의 추격을 받을 것이며 항상 불완전할 것이다. 겨자씨 비유는 교회 구조의 비정상적인 성장을, 누룩 비유는 현세의 하나님 나라가 어떤 의미에서 악을 능가할 것임을, 보화를 숨긴 밭의 이야기와 값진 진주의 이야기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얻기 위해 치르신 희생에 관하여 이야기한다. 마지막 비유인 그물 비유는 인자가 모든 사람들을 심판하는 날을 지시한다. 그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하여 의롭다 여김을 받은자들은 주께로 모여들 것이며 악한 자들은 영원히 주님으로부터 추방될 것이다.
이 땅의 하나님 나라는 이렇듯 불완전하므로 앞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가 완전히 구현되는 나라가 와야 한다. 또한 이 사실을 성도들은 마땅히 믿어야만 한다. 우리는 우리의 이웃들에게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이 다스리신다는 소식을 전해야만 한다.(행1:7,8)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끊임없이 부르신다. 그들을 영적으로 거듭나게 하시고 점차 변화되어가는 자들의 삶을 다스린다. 그러므로 "나라가 임하옵시며"라는 기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다스림이 우리 안에 찾아오도록 간구해야 하며 그 다스리심이 다른 사람에게까지 전달될 수 있도록 간구해야 한다.
3) 세번째 간구는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처럼 땅위에서도 이루어지도록 해 달라는 것이다. 성도들이 간구할 수 있는 정당한 제목들은 하나님의 뜻 안에 있는 것들이므로 이 간구는 매우 중요하다. 성도는 항상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처럼 나의 삶 속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만이 완전하시기에 다른 길은 항상 불완전하며 죄악된 길이다. 이 사실을 사탄의 타락은 명백하게 설명해준다.(사14:12-14) 사탄의 반역은 하나님의 정사를 탈취하고, 자신의 자리를 높이며,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는다는 것을 자랑하고(이 당시는 인간이 창조되기 전이었으므로 이는 천사들의 집회였다. 이 말은 사탄은 하나님 주변에 둘러 서 있는 천사의 군대보다 높아지려 시도한 것이다.), 가장 높은 구름 위에 오르며, 하나님 자신을 대신하겠다는 것이었다. "내가 ...하리라"고 반복해서 말하나 그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그러나 이제 네가 스올 곧 구덩이 맨 밑에 떨어짐을 당하리라"(사14:15)고 말씀하신다.
사탄의 반역이 나타났을 때 하나님은 즉각 사탄을 없애버리고 즉각 더 아름다운 피조물을 만드셨을 수 있다. 그러나 그리 행하셨다면 계속 되는 반역에 직면하셨을 것이며 그런 반역을 만날 때마다 거친 심판과 새로운 창조를 행하셔야만 했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방법을 택하셨다. 즉각 심판하지 않으시고 심판을 유보하셨다. 그리고 반역자가 자기 지혜를 총동원하여 자기가 갈 수 있는 갈을 가도록 '허용'하셨다. 그리하여 마침내 하나님의 뜻에 반역하는 어떤 뜻도 선한 것을 역사 안에서 이루어낼 수 없다는점을 입증해 주고자 하셨다. 이러한 반역은 불행으로 이끈다. 인간의 반역한 의지는 하나님에 대한 완전한 의존과 자발적인 복종 없이는 어떤 생명, 희락, 화평, 행복도 없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본성이 아닌 하나님의 뜻으로 기도해야하는 것이다.
행복과 기쁨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굴복할 때에만 찾아올 수 있기에 위의 사실은 중요하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우리는 질문할 것이다. 이는 말씀을 통해 알 수 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요6:40) 더 나아가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 복종하며 그의 거룩함으로의 성장을 방해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사실이다.(롬12:1,2)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들은 또한 하나님의 뜻이다. 예를 들면 구하는 자에게 지혜를 주시며(약1:5) 간구하는 자에게 평강을 주신다(빌4:6,7)는 말씀 말이다. 우리는 최선의 것들을 추구해야 한다(빌4:8). 이러한 최선의 것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성경을 읽을 때 얻어진다. 우리가 원한다면 확신을 갖고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고(요일5:14,15), 그 뜻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해 감에 기뻐할 것이다.
이토록 우리는 기도에 확신이 필요하다. 야고보가 처형당한 직후, 투욕당한 베드로도 처형당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 때 초대교회는 기도했으나 막상 출옥한 베드로를 본 여종에게 성도들은 "네가 미쳤구나"라고 말한다.(행12:5-17) 우리는 이토록 믿음 없는 기도를 드릴 때가 얼마나 많은가!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님의 이름과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영광 안에 살면서 기도하도록 가르치신 것은 결국 "주의 뜻이 이루어지소서"라고 담대하게 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확신을 갖고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삶과 우리의 교회에 구현되도록 간구해야 한다. 루터의 친구이자 조력자였던 프레드릭 니코니우스가 병이 들어 죽게 되엇을 때 편지를 보냈다. "나는 자네에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더 살 것을 명령하네. 왜냐하면 나는 교회 개혁의 사역에 아직까지 자네가 필요하기 때문이네. (중략) 주께서는 나로 하여금 그대가 죽는다는 소식을 듣도록 허용하지 않으실 것일세. 오히려 주님은 그대가 살아남도록 허용할 걸세. 나는 이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네. 이것은 내 뜻이네. 내가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할 것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내 뜻이 이루어지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네." 루터의 편지가 도착했을 때 니코니우스는 말할 기력조차 잃었으나 그는 회복되어 6년 동안 더 살았다. 심지어 루터보다도 두 달이나 더 살았다. 이러한 믿음 있는 기도를 잃어버리지는 않았는가? 우리는 이처럼 담대하게 기도해야한다. "아버지여! 저는 저 자신을 위해서 이 일을 간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저는 당신의 이름이 영화롧게 되기를 원합니다. 나의 상황, 나의 삶 속에서 당신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옵소서. 그리고 내 삶이 당신에게 속해 있음을 모든 사람이 알게 하여 주옵소서."
묵상 : 우리는 전도에 대해 많이 논한다. 성도임에도 예정에 대해 잘못 이해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듣지도 못한 채 죽어가는 이들을 보며 따지는 이들이 있다. 그런 그들은 자신이 받은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한 충분한 노력을 했는가? 나 자신이 은혜를 입은자인데 다른 이들에게 은혜가 전해지도록 노력하지 않고 은혜 주신 자를 비방하는가. 또한 전도는 단순히 내가 입은 사랑이 너무도 크고 기쁘기에 전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라는 측면에서의 의미가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이러한 관점들을 "나라가 임하옵시며" 라는 말을 통해 우리에게 다시금 가르친다.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닮아가기에 우리의 간구는 마땅히 하나님의 나라이며 뜻이어야만 한다. 그 때에 우리에게는 지금 당장 보이지 않을지라도 그것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그러나 나도 그러한 확신있는 기도가 부족하다. 기도의 응답을 여러번 받았으나 여전히 조심스럽다. 내 기도가 과연 하나님의 뜻에 부합한 기도일까 걱정한다.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것은 믿음이 자라며 하나님의 응답을 더욱 누리고 하나님의 이끄심을 더욱 보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응답은 직접적으로 소리가 들리거나 환상이 보이는 것으로 주어지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통해, 때로는 극적인 상황에 처하는 것을 통해 보여주셨다. 그것은 때로 짜증나는 일일 수도 있다. 그래서 그 가운데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가 더 어려운 것 같다. 그러한 하나님의 세밀한 교훈을 깨닫기 위해서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과 더불어 살아야 하며 하나님을 잊은채 살아서는 안된다. 그것이 항상 기도하라는 말씀의 참된 의미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개인적으로 응답을 누릴 때 기도의 기쁨을 더욱 누렸던 것 같다. 나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눈이 멀었을 때 나는 결코 응답을 받지 못했다. 그 응답을 누리는 것은 하나님의 뜻으로 간구할 때 누릴 수 있었다. "하나님 제가 이런 고민 가운데 있는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와 같은. 더욱 하나님의 뜻으로 간구하겠다. 하나님의 뜻으로 간구하기에 또한 그것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신을 더욱 누리겠다. 그 때 내 기도가 모두 이루어진다는 큰 은혜와 위로를 누리게 될 것이며 세상의 것에 휘둘리지 않고 천국의 상급을 더욱 쌓아나갈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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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절)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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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절부터는 육체적인 필요와 죄사함과 영적인 승리를 간구한다. 이 간구는 하나님의 영광을 새롭게 인정하는 것으로 글을 맺는다.
우선 11절에서는우리의 육체적인 필요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지나치게 많은 것들을 위해 기도하지는 않는다. 이에 대해 빌4:19에 나타나는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소원을 충족시켜 주신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때로는 그 복이 우리 영혼에 해를 끼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생활에 반드시 필요한 것들만 간구해야 한다. 이에 대해 간구하는 까닭은 하나님께서 확실한 목적을 갖고 우리에게 우리가 요구하는 바를 주시기 때문이다.
마7:7-11에서 하나님은 구하는 자가 받고, 찾는 이가 찾을 것임, 두드리는 자에게 열릴 것임을 말씀하신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7:11) 이 본문에서 우리는 몇가지 사실을 살펴볼 수 있다. ①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기 전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한다. ②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초청을 받을 뿐 아니라 강요받는다. ③하나님은 나오는 자에게 응답하시기를 기뻐하신다. 우리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신다.
또한 이 기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몸을 돌보신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뿐 아니라 우리의 육체도 소중히 여기신다. 예수님께서도 인간의 질병을 치유하며 굶주림을 만족시키는 일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셨다.
'일용할'이라는 표현을 통해서 우리는 순간순간 하나님을 의존하며 살아야 함을 배운다. 내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고 오늘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 간구하는 삶을 살라는 것이다. 이 말이 우리가 미래를 위해 계획하고 저축하지 말라는 말은 아니다. 그보다는 우리의 미래가 그와 같은 것에 달려있는 것이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때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필요를 박탈하실 때도 있으나 이는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쳐주고 하나님을 찬양케 하기 위해서 하시는것이다. 신실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지나치게 큰 궁핍을 겪도록 하지 않으신다.
우리는 영적인 양식도 간구해야 한다. 예수님은 자신이 생명의 떡이라고 가르치셨다.(요6:32-35) 예수님은 모든 영적인 생활의 근원이며 우리가 그리스도께 나아가 그에 대하여 배울 때만 영적으로 성숙할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대신 다른 것을 요구한 적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셨으나 그 받은 것 때문에 그들의 영혼은 쇠약해졌다.(시106:17) 우리는 육체의 양식 뿐 아니라 영혼의 양식을 함께 간구해야 한다.
또한 예수님은 11절부터의 간구를 가르치실 때, 이 간구를 단수가 아닌 복수로 표현하셨다. 우리는 이기적 태도로 기도해서는 안된다는 사실, 우리 자신 뿐 아니라 우리와 함께하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치시기 위함이다. 남을 위해 기도할 때 모든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셨던 예수님의 마음에 좀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은 생명의 근원이며 유지자이시다. 우리는 충족함을 받기 위해 그리스도께 나아간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향유가 가득 담긴 병과 같아 그리스도의 향기를 세상에 퍼뜨리는 자들이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배우고 체험한 것을 나누어야만 한다.
묵상 : 나는 종종 나를 위해서만 기도한다. 타인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내게는 늘상 어려운 문제다. 나는 아직도 나밖에 모르는 이기적 존재이다. 그런 나에게 주께서 "우리에게" 일용햘 양식을 달라고 기도하기를 요구하신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나는 그 충만한 사랑을 누리고 그것을 닮아가는 존재이기에 당연히 그 사랑을 나누며 전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 사랑은 삶을 통해 드러나는 것은 물론, 기도를 통해 내가 타인을 사랑하고 있음을 내적으로도 증거해야 한다. 많은 주변인들의 아픔을 듣고, 그들의 필요를 듣고, 그들을 위로하며 함께 기도로 돕는 성도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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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4,15절)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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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는 용서에 관해 말하고 있다. 이 간구에서는 오직 한가지 의미의 용서, 불순종한 하나님의 자녀를 의롭다 하신 이후에 주어지는 용서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 용서가 가능하기 전에는 먼저 하나님의 가족의 일원이 되도록 해 주는 용서가 필요하다. 예수님을 믿고 이전의 모든 죄를 영단번에 용서하셨다. 이것에 대해 기도를 해야 한다면 우리는 안전할 수 없다. 여기서는 그 이후에 되풀이 되는 용서로서, 하나님과 깨어진 관계를 회복시키는 용서를 말하고 있다.
예수님은 다른 사람을 용서함으로써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 수 있다. 이 말이 우리의 행위를 통해 은총을 받는다는 말은 아니다. 우리의 마음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바르게 정립되어 있지 않다면 진정으로 하나님으로부터도 용서를 구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용서 해야하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를 고백한다면 그 고백은 반드시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태도로 나타나야 한다.
우리는 더 나아가 우리가 구하는 용서를 하나님께서 반드시 주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불안해 하지 말아야 한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1:9) 용서는 하나님의 미쁘심과 공의로우심에 근거하므로 우리가 절대적으로 죄를 용서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다.
하나님이 이와 같은 완전한 용서를 미리 우리에게 확신시키신 까닭은 우리가 죄를 범하는 것을 미리 예방하기 위함이다.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을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함이라"(요일2:1)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자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롬1:14,15) 여기서 빚진자는 먼저 하나님께 죄를 용서받은 빚진 자라는 의미다. 또한 우리는 인간들에 대해 빚진자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의 죄를 용서하셨다는 사실을 안다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용서 할 빚을 지고 있다는 말이 된다.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눅12:48)
묵상 : 나는 그리스도인이 되며 나를 선한 길로 인도하는 새로운 성품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내게는 여전히 죽기까지 근절되지 않을 악한 옛 성품이 내재하고 있다. 이러한 괴리 속에서 나는 항상 죄를 범하게 될 것이다. 믿음이 자라며 차이가 나는 것은 성화를 겪으며 점차 죄를 억제하게 될 것이며,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더욱 명백히 보게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 그런 믿음이 없는 것 같다. 내가 죄인이라고 고백하지만 그 것을 뼈저리게 느끼지 못한다. 물론 가끔 특별한 상황을 통해서 보게 될 때가 있지만 대체로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 여긴다. 그러나 내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이들에 대한 분노와 용서하지 못함은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명백히 드러낸다. 그러나 예수를 닮아야 한다. 더욱 용서와 사랑이 가득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나는 용서해야한다. 실천하기 어렵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이를 위해 새로운 성품에 더욱 순종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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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절)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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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에는 몇가지 종류가 있다. 우선 우리의 믿음을 강화시키기 위해 하나님께서 하시는 시험이 있다.(약1:2-3) 또한 우리의 죄악된 성품에서 나오는 시험이 있으며(약1:13,14) 이 시험은 이기도록 요청받는다. 마지막으로 악마로부터 받는 습격에 관한 시험이 있다.(약4:7) 이 기도에서 언급하는 시험은 마지막 사항, 사탄으로부터 찾아오는 시험이다.
사탄이 주는 시험에 대해 우리는 하나님께 복종하며 동시에 마귀를 대적해야 한다.(약4:7) 자신의 뜻을 하나님께 복종 시켜야 한다. 이러한 복종은 인격적 관계를 맺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므로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항해야 한다.
예수님은 인자로 오셨다.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시험을 당하셨을 때(마4장)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자신의 신성에 의존하지 않으시고 말씀에 의존한 것은 우리를 위한 본보기가 될 것이다. 예수님은 그 시험을 이기기 위해 먼저 40일동안 금식과 기도를 하셨고 말씀을 통해 악마에게 답변하셨다. 우리는 예수님을 본받아야 한다. 그분이 하신 것 처럼 기도하고, 성경을 배울 때 시험을 극복하고 승리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감당치 못할 시험을 허락치 않으시며, 시험 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주신다.(고전10:13) 우리는 시험을 당할 때에도 기도와 말씀으로 무장되어 있다면 하나님 앞에서 큰 확신을 잃지 않을 것이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라고 맺음으로 이 모든 것이 진실임을 인정하고 있다.
묵상 : 시험을 당할 때 우리는 이겨내야 한다. 그 무장을 위해 충분히 기도하고 묵상하겠다.
주기도문을 묵상하는구나. 기도의 표본! 우리는 기도함으로 하나님과 교제하고 뜻을 알수 있고 또 구할 수 있는 자들이니 더욱 힘써야겠다. 중보의 힘을 믿는다!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자^^
답글삭제그래야지. 나는 오늘 몸이 완전 최악이네. 기도하는김에 같이 기도해줘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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