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2013년 9월 15일 일요일

마가복음 1장

with 존.라일 사복음서 강해
[막1:1-8] 세례 요한의 사역 복음서 (마3:1-12;눅3:1-9,15-17;요1:19-23)
 이 복음서는 다른 세 복음서와 달리 예수님의 탄생과 유년 생활에 대해 전혀 말하지 않고, 주님의 말씀과 대화에 대한 내용은 거의 담고 있지 않다. 사복음서 가운데 가장 짧다.
 그러나 이 복음서는 뛰어나게 예수님에 관한 귀중한 사실들로 가득 차 있다. 주님의 말씀에 대해서는 거의 말하지 않으나, 주님의 행위에 대해서는 풍부하게 알려준다.
 "마가는 간결성과 생생한 묘사를 아주 멋지게 혼합할 수 있는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모든 경우에 그는 대화와 행정과 사건을 가능한 한 아주 단순한 핵심으로 압축시킨다. 그러면서도 그는 대화를 더 잘 묘사한 마태보다도 사건의 묘사에 있어서는 훨씬 더 명백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의 손 안에서는 단편적인 사건들도 완전한 묘사가 될 뿐만 아니라 그가 간단하게 연필 한번 대기만 해도 그 모든 것이 새롭고 독특한 모습이 되어버리는 것이다"(Stier, Words of the Lord Jesus)
 본문에 집중을 해보자. 본문을 통하여 예수님의 인격의 존엄성이 완전하게 선포되고 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예수님을 말하고 있다. 이는 예수님의 신성에 대헌 선언으로 하나님과 동등한 자임을 선언하는 것이다.(요5:18) 예수님의 대속적 죽음은 단순한 인간으로서의 죽음이 아니었다. 만물 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롬9:5) 하나님으로서의 죽음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 사람의 고통이 이 세상의 죄를 충분히 화해시킬 수 있음을 의심하지 않을 수 있다.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사9:6)
 세례 요한은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라고 말하며 사역을 시작하였다. 예수님의 오심은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라 예언 되어있었던 것이다. 계시는 점진적으로 이루어졌다. 구원은 기록된 대로 그 모든 단계가 실행되고 성취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약을 읽을 때 언제나 그 안에서 예수님에 관한 것을 찾으려 해야 한다. 이 성경은 예수님에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다.(요5:39)
 세례 요한은 유대 국가에 끼쳤던 영향이 대단히 컸다.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5절)라고 말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러나 그 가운데 참으로 적은 수만이 회심했다. 인간은, 특히 대중은 참으로 믿을만하지 못하다.
 이 세례 요한의 설교를 통해 예수님이 오실 것을 말하고 있다.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셔서(7절) 성령으로 세례를 줄 것을 말하고 있다.(8절) 참된 설교자는 예수님을 소개하고 예수님의 구원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는 요한이 전파한 진리들을 실제 경험을 통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또한 우리는 성령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성품에 참예하도록 하였는가?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물어봐야할 것이다.

[막1:9-20] 공생애를 시작하신 그리스도
막1:9-11 세례를 받으시다 (마3:13-17;눅3:21-22)
막1:12-13 시험을 받으시다 (마4:1-11;눅4:1-13)
막1:14-15 갈릴리에서 복음을 전파하시다 (마4:12-17;눅4:14-15)
마1:16-20 어부들을 부르시다 (마4:18-22;눅5:1-11)
 이 짧은 본문 안에 예수님의 세례, 광야에서의 시험, 주님의 설교의 시작, 제자를 부르신 일들이 모두 포함되어있다. 마가복음 문체의 간결성이 잘 나타나 있다.
 예수님이 세례 받을 때 들려온 소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소리였다. 이 소리는 영원부터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있어 왔던 놀라운 사랑을 선포한 것이며, 그리스도의 사역의 보증이다. 성도들은 아버지께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로 여기시기에 아무 흠도 보지 않으심(아4:7)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의로 옷입혀진 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부여받은 놀라운 권한에 더욱 확신할 수 있다.
 예수님은 설교하실 때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말씀하셨다. 구약 시대의 말씀과 동일했다. 회개와 믿음은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필요 조건이다.
 그리스도의 제자로 부름 받은 이들은 사회의 지도층이 아니었다. 몇 사람의 어부로 시작한 교회를 통해, 이 모든 것이 사람의 능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세우신 것임을 더욱 확신할 수 있다. 또한 성도는 자신의 가난과 노동을 결코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음을 아게 된다. 오히려 하나님은 죄를 짓는 귀족들보다 충실한 노동자를 더욱 사랑하셨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를 따라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고 말씀하신다. 제자들은 사람들을 어둠에서 끌어내어 빛으로 인도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사람을 낚는 어부"라는 말은 목회의 소임을 표현하는 명칭이기도 하다. 어부가 고기를 잡기 위해 모든 수단을 다하며, 실패할 경우 슬퍼하듯이 목회자들도 그러해야 한다. 근면과 인내를 모두 지녀야 한다. 우리는 이렇게 수고하는 목회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막1:21-34] 치유하시는 그리스도
막1:21-28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을 고치시다 (눅4:31-37)
막 1:29-34 많은 사람들을 고치시다 (마8:14-17;눅4:38-41)
 하나님을 단순히 아는 지식은 아무 소용 없다. 분명 귀신은 예수님을 보고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라고 소리질렀다. 그러나 그들은 영광스러운 자리에 있지 못한 존재일 뿐이다. 그저 머릿속으로만 아는 지식은 마귀와 다를 바 없다. 진정 우리는 그분만을 믿어야만 한다. 믿음이라는 단어에 포함된 깊은 의미를 깨달아야 한다. 루터는 기독교의 생명이 소유대명사에 있다고 말했다. "그리스도는 구세주이시다"라고 말하되 "그는 나의 구세주이시다"라고 말하는 믿음을 갖자.
 우리는 어려운 시기에 예수님을 의지해야 한다. 베드로의 장모는 열병으로 누워있을 때 예수님께 먼저 아뢰었다. 야곱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 내시옵소서"(창32:11)라고 외쳤듯, 우리도 하나님께 우리의 염려를 맡기고 간구해야 한다.(벧전5:7)
 예수님은 그 간구를 들으신다. 베드로의 장모를 고치신 예수님을 통해 알 수 있다. 단순히 낫게 하신 것이 아니다. "열병이 떠나고 여자가 그들에게 수종드니라"(31절)는 말씀을 통해 병이 나은 후 바로 힘을 얻어 일할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해졌다. 이는 죄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예수님의 궁극적 사역에 대한 생생한 상징이기도 하다. 성도가 주님께 담대하게 나아갈 때 그분은 우리를 위로하시며 해결해 주실 것이다. 때로 우리의 간구를 들으시지 않는 것 처럼 여겨질 때, 우리는 우리의 믿음에 대하여, 우리의 간구가 참 하나님의 뜻인지에 대하여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막1:35-39]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 (눅4:42-44)
 앞에서 베드로의 장모의 간구가 나왔다. 그리고 바로 뒤이어 35절에서는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라고 말한다.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실 때(눅3:21), 변화되셨을 때(눅9:29), 열두 사도들을 선택하기 전에(눅6:12), 모든 사람이 그를 왕으로 세우려고 했을 때(막14:23), 겟세마네 동산에서 시험 받을 때에(막14:32) 기도하셨다. 예수님은 아버지와 끊임없이 교제하심으로 우리에게 그 기도의 본보기가 되셨다. 또한 예수님의 신성은 인간으로서의 모든 기능 위에 부여된 것으로서, 그의 완전은 기도의 능력을 통해 유지되는 완전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예수님과 달리 결점이 많은 죄인이기에, 더욱 기도에 힘써야 할 것이다. 그리고 더욱 하나님과의 교제에 목메달아야 할 것이다. 기도가 없으면 은혜와 능력과 평안과 소망도 없다는 것을 언제나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나는 어떠한가? 나도 연구실에서 바쁘다는 핑계로 기도가 부족하다. 그렇다면 휴일에는 많이 하는가? 그렇지도 않다. 그런데 그 시간조차 참되게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은 어렵다. 결국 기도의 부족은 나의 의지와 순종의 문제인 것이다. 아직 심령이 부족하지 않은 까닭이다. 더욱 하나님과 대화하는 시간을 깊이 가져야겠다.
 또한 여기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말씀하신다.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38절). 예수님은 이 지상에 설교자와 교사가 되기 위해 오셨다. 모세보다 더욱 위대한 선지자(신18:15)가 되기 위해 오셨다. 그는 지상에 내려오셔서 이곳 저곳에 복음을 전하셨다. 예수님은 이토록 설교자의 직분에 무한한 명예를 두셨다. 그는 죽기 전까지 끊임없이 말씀을 전하는 자로 일하셨다. 우리는 그 명예가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설교는 영혼을 회심시키고 구하기 위한 하나님의 장엄한 의식이다. 우리는 내 영혼을 새롭게 하기 위해 그 말씀 한마디 한마디를 더욱 경청해야 한다.

[막1:40-45] 문둥병자를 고치심 (마8:1-4;눅5:12-16)
 예수님께서는 병자들을 치료하셨다. 그 가운데 문둥병을 고치신 것은 놀라운 사건이며, 복음서 전체에서는 두 경우만 상세하게 서술한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본문이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치유하신 병의 두려운 상태를 깨달아야 한다. 그것은 피부, 피, 살까지 영향을 미친다. 한 인간 전체에 근본적인 영향을 미치는 병이다. 유대인들은 문둥병자를 부정한 자로 여겨 이스라엘 회중과 종교의식에서 제외시킬 정도였다. 이 문둥병은 우리 영혼의 질병을 상기시킨다. 우리는 우리의 죄가 이토록 끔찍하다는 사실을 볼 수 있어야만 한다.
 예수님은 그 병을 단 한마디의 말, 단 한번의 접촉으로 고칠 능력이 있는 분이다.
 문둥병자가 병이 나았을 때 얼마나 기뻐했는가! 마찬가지로 우리는 마땅히 믿음으로 나의 끔찍한 죄를 용서받고, 영생을 얻을 때 기뻐해야만 하며, 기뻐할 수 밖에 없다.
 또한 우리는 예수님의 사역에 대해 말할 때 때로는 잠잠히 하고 있어야 할 때도 있다.(43-44절) 물론 병고침 받은 자는 얼마나 기쁘고 감사했겠는가! 그러나 예수님의 권고에 순종하지 않아 그 이적은 널리 퍼지게 되었고, 예수님은 다시는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셨다.(45절) 우리에게는 분명 열심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지혜로 때를 분간할 줄 알아야 한다. 때로는 주님께서는 우리가 고요함과 인내로 일을 감당하기 원하신다.
 마지막으로 조지 피터의 주석을 살펴보겠다. "우리는 어떤 진리도 결코 부인해서는 안된다할지라도, 때때로 진리를 숨기는 것이 현명한 때가 있다.(전3:7) 언제 우리는 진리를 숨겨야 하는가? ⓐ그것을 말함으로써 진리 자체에 손해를 가져오게 될 때, 즉 여기에서처럼 이 기적을 말함으로 그리스도의 사역을 멈추게 하는 그런 경우이다. ⓑ그 진리를 통해 유익함을 얻기보다는 트집을 잡고 비웃기 쉬운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진리의 악독한 원수들의 무리 속에 있을 때(마7:6)이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

Blogger Tips And Tricks|Latest Tips For Bloggers Free Backlin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