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2:1-12] 가버나움과 치유받은 중풍병자 (마9:1-8;눅5:17-26)
가버나움은 예수님께서 나사렛을 떠나신 후에 살던 곳이다.(마4:13) 예수님은 이곳에서 오래 머무셨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과 이적은 별 효과가 없었다. 가버나움 주민들은 예수님의 위대한 행적에 놀랐으나, 회심하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예수님께 정죄받았다.(마11:23-24)
불신자의 회심을 위해 분명 복음이 필요하다. 그러나 가버나움을 통해 불신앙이 얼마나 뿌리깊은 것인지를 깨닫게 하신다. 우리의 마음은 완악하다.
중풍병자는 예수님께 육체와 영혼 모두 고침을 받았다. 중풍병이 아니었다면 그리스도를 전혀 바라보지 못했을지 모른다. 때로 고난은 우리 영혼에 복이 된다.(시119:71)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 중에 있을 때 타당한 이유가 있음을 확신하고 불평하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은 이 사건에서 분명하게 죄를 용서하시는 권능이 있음을 선포하신다. 참으로 예수님을 의탁할 때 우리는 죄를 용서받을 것이다.
[막 2:13-22] 새 포도주와 낡은 가죽부대
막2:13-17 레위를 부르시다 (마9:9-13;눅5:27-32)
막2:18-22 금식 논쟁 (마9:14-17;눅5:33-39)
예수님께서 레위(마태)를 부르셨고, 그는 예수님을 좇았다. 하나님의 부르심없이 우리는 구원받을 수 없다. 여전히 세상의 유혹이 있으나 그리스도의 부르심은 그보다 더 강하다.
예수님께서 죄인을 부르실 때, 절대적 권위로 부르심과 동시에 무한한 자비로 부르신다. 때로는 그의 나라에 전혀 어울릴 것처럼 보이지 않는 자들을 부르신다. 이를 통해 구원은 새로운 피조물로 재창조되는 사건임을 깨닫게 된다.
예수님은 의사로서 많은 임무를 행하셨다. 죄인을 치유하시는 의사다. 우리는 그 분 앞에서 우리가 죄로 가득한 환자임을 느껴야한다. 그 때 우리는 죄를 혐오하며 나 자신의 죄를 깨달을 것이다. 이를 그리스도께 의탁할 때 치유하실 것이다.
생베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 새 포도주를 헌 부대에 넣는 자는 없다. 예수님은 자신의 제자들이 금식하지 않는 것을 비유로 대답하셨다. 물론 마태복음 묵상을 하며 쓴대로 이 말씀을 통해 제자들의 연약한 믿음을 배려하는 예수님의 자상함을 배운다. 예수님 자신이 이 세상의 그 어떤 인간과도 비교할 수 없는 위대한 분이라는 사실도 알게 된다. 동시에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복음을 혼탁케 해서는 안된다는 진리도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만을 의지해야 한다.
[막 2:23-28] 안식일에 대한 올바른 견해 (마12:1-8;눅6:1-5)
종교의 참된 교리보다 형식적인 의식을 더 귀중히 여기는 자들이 많다. 복음의 본질적인 가르침보다 외형적인 것에 관심을 쏟는이들이 많다. 하나님은 순종을 제사보다 귀히 여기신다.(삼상15:22)
또한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의 비방에 대해 성경 말씀으로 답하셨다. 다윗은 몹시 시장하여 제사장 외에는 먹지 못하는 진설병을 먹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법에 대한 어떤 요구가 필요한 경우에 있어서는 관대해지기도 하셨음을 보이셨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취해야 할 행동을 배우게 된다. 또한 원수들의 비방을 견디게 하는 무기이기도 하다.
또한 본문에서는 특별히 안식일에 대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마가복음에만 기록된 말씀이다. 안식일은 은혜와 복으로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주일 성수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달아야 한다. 물론 안식일은 거룩히 지켜야 하나(4계명), 본래적으로 안식일은 인간을 위해 주신 특권이자 선물이다. 우리에게 이런 특권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기에 우리는 그날을 거룩히 여기는 것이다. 다윗의 예를 통해서도 안식일이라는 특정 날짜 자체를 향한 우상화가 아님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안식일의 본질적 의미를 깨달아야 한다고 역설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인자가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참된 의미는 예수님께서 모든 유전법과 안식일에 관하여 인간이 만든 법을 지킬 의무가 없으며 바리새인들이 안식일에 대해 과중하게 짐을 지운 것을 지킬 의무가 없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왜곡한 잘못된 가르침에서 해방시키고 참된 의미를 회복시키신다. 이 말씀 가운데 예수님의 신성(마12:6)이 드러난다. 또한 일곱째 날에서 첫째 날로 안식의 날을 변경하려는 그의 의도도 드러난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