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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1일 일요일

마태복음 18장

[18:1-14] 겸손한 회심과 지옥
 우리는 말씀을 통해 먼저 어린 아이와 같이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는 회심의 필요성을 배운다. 천국에서 누가 크냐고 묻는 제자들의 마음 속에는 반쯤 세속적인 기대로 가득 차 있었다. 회심이 없으면 구원이 없다. 우리는 거듭나야 한다. 참된 회심의 가장 확실한 증거는 겸손이다. 겸손할 때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완전히 의지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어린 아이와 같은 자가 천국에 들어간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또한 신자의 길에 놓여있는 죄의 장애물을 배운다. 우리가 누군가를 그리스도로부터 멀어지도록 무엇을 할 때마다 우리는 그들의 영혼에 장애물을 놓는 것이다. 나는 세상에, 이웃들에게 그리스도를 욕되게 하며 해를 끼치고 있지는 않은가? 다윗에 대해 나단의 책망 중 하나는 "여호와의 원수로 크게 훼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다"는 것이었다.(삼하12:14)
 뉘우치지 않으면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의 지옥 속에 있을 것이다. 회개한 자에게 천국이 있다면 불경건한 모든 사람에게 지옥이 있다. 물론 이 말씀은 신자가 당할 고통이 아니다. 내가 살면서 물론 실수를 할 수는 있으나 그것을 말씀하시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또한 신자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우리가 바른 길에 서 있지 않다면 나 자신을 진단해야만 한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지극히 작고 낮은자도 귀중히 여기신다. 하나님은 상냥한 목자시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삽나이다"(요18:9)라는 그리스도의 고백이 있기에, 우리가 철저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다만 위의 경고의 말씀을 통해 나 자신이 더욱 변화되도록 채찍질 해야할 것이다.

[18:15-20] 형제간의 불화 조정의 원칙
 우선 우리는 형제간의 불화를 고치기 위해 예수님이 제정한 규칙의 훌륭함을 보게 된다. "부드러운 혀는 뼈를 꺾"는다.(잠25:15) 우리는 다정하고 솔직하게 단독으로 상대하여 권고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이 아무런 효과를 내지 못할 때 우리는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그 형제에게 권면해야 한다. 그럼에도 소용이 없을 때 우리는 "교회에 그 문제를 말해야"한다. 그럼에도 그 충고를 듣지 않을 때 우리는 "이방인과 세리"보다도 더 낮은 동기에 의해 인도된 사람으로 간주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사랑이 풍성하신가! 나는 분대장이었을 때 가끔 후임들의 잘못을 점호를 위해 다같이 모여있을 때 혼낸 적이 있다. 얼마나 잘못된 행동인가. 우리의 본성은 이토록 악하며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다. 주님의 사랑을 풍성히 깨달을 때 우리는 그 사랑으로 권면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는 권징의 권한을 위임받았다. 교회와 예수님의 가르침에 끊임없이 불순종하고 말을 듣지 않는 이에게 집회의 법령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모든 회중에게 권위를 주셨다. 공정한 책벌이 가해질 때 교회를 경시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라는 말씀은 교회의 권징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이다. 이는 가톨릭에서 말하듯 고해성사의 근거가 되는 구절이 결코 아니다. 우리는 사랑으로 이웃을 품되, 분별있게 이 권한을 사용해야 한다.
 또한 예수의 이름으로 만날 때 예수님께서 그 가운데 계심을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편재하시는 하나님이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이시에 그런 충만한 신적 속성을 갖고 계신다. 이 말씀은 또한 공적 예배를 소홀히하는 자들에 대한 책망이기도 하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이는 모임은 영광스러운 자리다.

[18:21-35] 끝까지 용서하라
 앞에서는 끊임없이 예수님의 가르침에 반하며, 교회의 권징에 불순종하는 자를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여기서는 전혀 다른 관점으로 보이는 용서에 대해 말씀하신다. 이와 같은 연결은 앞 본문만 볼 경우 우리가 곡해할 수 있기에 그 중도를 가르치시는 예수님의 지혜다. 우리는 그 지혜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라는 말씀은 세상의 법률과 질서에 대한 죄를 간과하라는 말씀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웃을 향한 자비와 용서의 일반적인 마음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관대함과 양보를 배워야 한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있게 하는 두가지 강력한 동기가 있다. 우리는 주님의 자비에 크게 빚진 자다. 예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겨 그 많은 빚을 탕감해 주셨다. 우리도 늘상 하나님 앞에 죄를 짓지 않는가! 그 죄의 무게는 나를 향한 죄에 비하면 얼마나 무거운가! 또한  나 뿐 아니라 이웃도 끊임없이 잘못을 저지르는 불쌍한 피조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를 이해하며 용서할 수 있어야 한다. 싸우기를 좋아하고 용서할 줄 모르는 기질에 지는 것만큼 성령을 슬프게 하고 한 영혼에게 영적인 어둠을 가져오는 일은 없다.(엡4:30-32)

댓글 2개:

  1.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통해 매일 살아가는데 그것을 망각하고 나를 여지없이 드러내는 모습들.. 참된 회개의 증거는 겸손이라는 말이 다시 한번더 주님앞에 무릎꿇게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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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응. 겸손하지 않으면 나 자신을 포기해버리고 하나님을 주인으로 삼을 수 없으니. 그토록 겸손하다면 하나님에게 뿐 아니라 이웃에게 드러날 뿐더러, 내것이라 여겼던 것이 내것이 아니라 그저 하나님께 받은 것임을 알기에. 늘 주님앞에 무릎 꿇으며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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