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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12일 목요일

마태복음 25장

[25:1-13] 열 처녀 비유
 25장은 24장의 종말에 관한 말씀을 이어서 하고 있다. 예수님은 주님의 재림을 열 처녀의 비유를 통해 말씀을 하시며, 성도들은 깨어 마음을 굳건히 지켜야 함을 말씀하신다.(1-13절) 또한 예수님께서 재림하심으로 우리가 충성해야 한다고, 달란트 비유를 통해 말씀하신다.(14-30절) 마지막으로 심판의 큰 날을 묘사하시며 25장을 마친다.(31-46절)
 먼저 본문에 등장한 열 처녀 비유를 살펴보자.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교회는 선과 악이 뒤섞여 있는 상태일 것이다. 열 처녀는 모두 등을 들고 있으나 다서 사람만이 불을 켜기 위한 연료로 그릇에 기름을 담아갔다. 종말의 교회도 그러하다. 수많은 성도들이 세례를 받고 입으로는 신앙을 고백하나, 진실로 하나님을 따르지 않는 자들도 존재한다. 우리는 준비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신부들이 기다릴 때에 갑자기 신랑이 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재림도 언제 일어날지 모른다. 우리는 그러므로 한시도 눈을 팔지 말고 주를 바라봐야 한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끊임없이 "회개하라"고 외쳤을 때 많은 이스라엘 민족은 이를 듣지 않았다. 우리는 그들과 같은 끊임없이 회개를 촉구하는 성경의 말씀에 강팍한 자가 되기 말아야 한다.
 예수님이 오고서야 많은 사람들은 구원을 주는 참 믿음, 기독교의 가치를 깨달을 것이다. 그러나 그 가치를 깨닫는 것은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이루어 져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 후회해봐야, 문이 닫힌 혼인 잔치에 참여하기를 원한 다섯 처녀들과 같이 소용없는 일일 뿐이다. 참 성도들은 이러한 말씀을 듣고 믿기에 사람들로부터 조롱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인내심을 가지고 참아야 한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참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당한 고통에 대한 큰 상을 받는다. 그들은 그 혼인 잔치에 참여하게 된다.

[25:14-30] 달란트 비유
 이 비유는 앞의 열 처녀 비유와 유사하다. 그러나 열 처녀 비유의 강조점이 "경계"였다면, 본문은 "근면"에 대해 강조한다.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의 종이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달란트를 받았다. 우리는 교회의 지체로서 특권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믿음을 통해 그 무엇보다 가장 귀한 선물을 받았다. 나 또한 한때 받은 은사가 없다고 여길 때가 있었다. 그 모습은 한 달란트 받은 자의 모습과 같다. 내가 받은 것에 대해 감사를 모르고, 내가 받은 것이 얼마나 가치있는 것인지 깨닫지 못한 것이다. 우리는 물론 더욱 하나님의 선물을 간구할 수 있으나, 내가 받은 것에 대한 인식과 감사도 분명 필요하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특권과 자비를 오용한다. 우리는 부지런히 말씀을 읽고, 기도하며, 분별없이 쾌락만을 추구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회심해야만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빌려 주셨으나, 이를 갚지 않는 자들이 많이 있다. 우리는 모두 현재 우리의 모습보다 더 나아져야 한다. "너의 호흡을 주장하시고 너의 모든 길을 작정하시는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지 아니한지라"(단5:23)
 모든 그리스도인은 언젠가는 하나님과 계산을 해야 한다. 우리는 그분을 피할 길이 없다. 우리는 책망받지 않도록 우리 자신을 살펴야 한다.
 그 때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풍성한 상급을 받는다. 참된 성도라 할지라도 그들의 어떤 행위에서 온전히 거룩한 것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모든 성도는 불완전하다. 그러나 그 성도의 노력은 헛된 것이 아니며, 주께서 이 모든 것을 살피시며, 더욱 갚진 것으로 주신다. 그러하기에 레이톤은 "이 세상에서는 우리가 슬플지라도 내세에서 우리는 기쁨에 참여할 것이다"고 말한 것이다. 이는 우리에게 기쁨과 용기를 준다.
 회개하지 않은 그리스도인은 마지막 날에 변명할 여지가 없다. 왜냐하면 그 파멸은 자신의 잘못에 기초를 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양심의 소리를 항상 들어야 한다. 마지막 날에 모든 것이 판명난다. 그리고 우리는 열매맺는 믿음, 주님의 일을 실행하는 신앙을 가져야 할 것이다.

[25:31-46] 최후의 심판
 마지막 날의 심판자는 예수님이시다. 그분은 임금이시다.(34절) 믿는 자의 구주 되시며 친구 되시는 예수님께서 마지막 날의 심판자라는 사실은 성도들에게 큰 위안을 준다. 그러나 회심치 않은 자들은 이 말씀을 듣고 두려워 하며 주 앞에 나와야 할 것이다. "그 아들에게 입 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실 것이다"(시2:12)
 최후의 심판은 증거에 따른 심판이 될 것이다. 우리의 행위는 분명 우리를 정당화시키지 못한다. 우리를 의롭다 여기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믿음이다. 그리고 이 믿음은 분명 우리의 생활로 입증 될 것이다.(약2:17) 이는 참된 성도에게는 기쁨이며, 회심치 않은 자들에게 있어서는 두려운 것이다. 이는 성도와 불신자의 성품을 나타내는 심판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최종적인 결과, 천국과 지옥을 가르는 심판이다.
 다시금 그 심판의 기준을 살펴보자. 예수님은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35절)라고 성도를 칭찬하신다. 그러자 의인은 우리가 언제 그렇게 하였냐고 묻고, 예수님은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하나에게 한 것이 내가 한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그분의 사랑을 체험한 자다. 그리고 그 사랑이 우리 가운데 발현되어야만 한다. 물론 십자가에서 죽기 직전에 믿음을 고백한 강도처럼 자신의 사랑과 변화된 모습을 보이지 못한 채 죽는 자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시간이 있는 자라면 자신의 믿음이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한 것임을 알기에, 예수를 본받는 자로서 그 사랑이 내 안에서 드러나도록 해야할 것이다. 이는 십계명을 통한 명령이기도 하다. 우리 안에 더욱 풍성한 사랑이 흘러야 할 것이다.

댓글 2개:

  1. 사랑을 더욱 간구하고 이미 크신 하나님의 사랑 경험한 자로써 다른 이들에게 그 사랑이 흘러나갈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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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응. 매번 계시록이나 데살로니가서처럼 종말에 관한 이야기들을 읽으며 느끼는 것은 종말을 바라보기에 깨어 있어 준비하라는 말씀인데, 이것을 왜곡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아. 종말의 심판을 보기에 사랑을 보고, 우리는 현세에서 그 사랑을 베푸는 자가 되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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