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둘째 메시지 : 성전의 미래적 영광에 대한 예언적 약속(2:1-9)
[학2:1-2] 표제
1:1에 이어서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날짜를 다시금 이야기 하고 있다. 이 연대는 B.C. 520년 티슈리월 21일(10월17일), 즉 성전 재건을 시작했던 시기(1:15, 엘룰 24일(9월21일))보다 거의 한달 후였다.
60년 동안 방치된 폐허를 청소했을 것이다. 또한 그 1달 기간 동안 많은 행사가 있었다. 매주일의 안식일, 1일의 나팔절, 10일의 속죄일, 티슈리월 15-21일의 장막절, 티슈리월 22일의 휴일(레23장)이 있었다. 즉 학개의 둘쨰 메시지는 나팔절의 마지막 날에(1절) 스룹바벨, 여호수아, 그리고 남은 백성들에게(2절) 전달 되었다.
[학2:3-5] 성전 재건을 격려하기 위한 하나님의 임재의 약속
백성들은 솔로몬의 큰 성전과 비교하여 낙담하고 있었다. 백성들 가운데 일부는 솔로몬 성전의 영광을(66년전 B.C.586년) 보았던 사람들도 있었기 때문이다.(스3:10-13;슥4:10) 그들을 위로하기 위해 하나님은 학개를 통해 질문하신다.
너희중에 누가 이 전의 영광스러운 성전을 보았느냐?(3절)
지금은 성전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3절)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 것 없지 아니하냐?3절)
즉 하나님은 그들의 성전이 솔로몬의 성전처럼 찬란하지 않을 것임을 솔직히 말씀하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굳세게 하라(용기를 내라)고 말씀하신다. 다윗이 솔로몬에게 사역을 위임할 때(대상28:10,20)도 이 표현을 사용했다. 남은 백성들에게 이 말씀을 하신 것은 '나의 영이 계속하여 너희 가운데에 머물러 있'기에(5절)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고 굳세게 할 수 있다. 두려워 말라는 표현은 구원의 선포에서 보편적인 주제다.(사41:10,43:1)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그분은 우리 스스로 할 수 없음을 알기에 우리가 의지할 바를 알려주신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을 경배할 수 밖에 없다.
[학2:6-9] 성전의 미래적 영광을 선포
앞의 3절에서 백성들에게 현재의 성전이 솔로몬의 성전보다 찬란하지 않음을 말씀하신다. 그러나 곧이어 하나님은 미래의(천년왕국 시대) 성전의 영광은 그보다 훨씬 찬란하리라고 말씀하신다.(9절)
그리고 심판은 '조금 있으면'(6절) 일어날 것이다. 히12:26에서 본절을 인용한다. 물론 구약 선지자들은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시간을 보지 못했기에(사61:1-2;눅4:18-21) 이렇게 표현했다. 한편으로 하나님의 행동은 이처럼 즉각적으로 언제 발생할 지 모른다는 표현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러므로 매 순간 말씀을 자각하며 살아야 한다.
심판이 일어날 것이며, 모든 나라의 보배가 예루살렘의 성전에 바쳐질 것이다.(7절;사60:5;슥14:14) '만국의 보배'는 만국의 사모함을 받는 메시야를 예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미래의 성전(이 집)은 영광으로 채워질 것이다. 그 영광은 하나님의 임재를 가리키는 영광이다. 궁극적으로 천년 왕국 시대의 성전에 나타날 하나님의 영광이지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처음 오실 때 육체로 임하심을 가리키는 뜻도 함축되어있다.(눅2:32) 그러므로 시몬은 예수님께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라고 말했다.
하나님은 모든 나라의 재물을 다스리는 분이다.(8절)
또한 현재의 성전이 솔로몬의 성전보다 더 큰 영광을 지니게 될 것을 말한다. 왜냐하면 메시야가 찾아오시기 때문이다.(마12:6;요2:13-22) 그리고 궁극적으로 천년왕국 시대의 성전에서 그 영광은 이루어질 것이다. 이러한 문맥으로 미루어볼 때 백성들의 선전 재건은 단순한 건축의 의미를 넘어서, 천년왕국을 예비하는 영적인 역사인 것이다.
그 영광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에게 평강을 주신다.(9절) 그리고 하나님께서 평강을 주시는 이 곳(9절)은 예루살렘이다. 즉 예루살렘에서 영속하는 평강은 평강의 왕(예수님)의 임재로 말미암을 것이다.(사9:6;슥9:9-10)
### 셋째 메시지 : 순종의 현재적 축복을 드러냄(2:10-19)
[학2:10] 표제
둘째 메시지를 받고난 후 2개월 후인 B.C. 520년 키스레브월 24일(12월 18일)에 이 말씀을 받았다. 둘째 메시지를 받고난 후 2개월간(스가랴 선지자가 사역을 시작했다.(슥1:1)
[학2:11-14] 부패한 죄의 결과를 보여주는 의식적 비유
여호와께서 학개를 통해 제사장들에게 율법이 무엇이라고 말하는지 묻는다. 이 말은 공식적인 제사법을 추구하라는 말이다.
거룩한 고기(11절)은 희생의 목적으로 떼어논 고기를 의미한다.(레6:25;민6:20) 그 고기를 싼 옷자락도 거룩하여질 것이지만(레6:27) 그 옷자락의 거룩함이 다른 음식에게 전잘되지 않을 것이다. 반면 불결한 것은 다른 것에 전염될 수 있다.(13절;레11:28,22:4-7)
이 말씀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해석의 폭을 조금 더 확대하자면, 우리가 선한 일을 했다는 것이 우리의 죄를 덮지 못한다. 나의 죄가 내 주변인의 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토록 쉽게 전염된다. 그것이 우리의 본성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죄에 대해 더욱 민감해야 한다. 그리고 그 가운데 거룩을 유지하도록 나를 "떼어 놓아야" 한다.
14절에서 학개는 앞의 질문을 그친다. 그리고 유대 백성들에게 불순종의 희생 제사가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수 없다고 말한다. 우리는 여기서 '그렇다면 하나님은 외형을 중시하는 분인가?'라고 오해할 수 있다. 결코 그런 의미가 아니다. 다만 하나님을 참으로 경외한다면 그분이 명하신 바를 내 임의대로 수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다.
[학2:15-19] 과거의 징계와 비교된 현재적 축복의 약속
15절에서는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바(성전 재건)를 이행하지 않음으로 겪게된 경제적 재난을 회상하도록 요청한다. 이는 본절에서만 단일적으로 요청한 것이 아니다. 1:5,7, 2:15,18절을 통해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그토록 중요한 말씀이다. 우리는 우리 죄의 결과를 돌이켜 보아야만 한다. 그 경고를 끊임없이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오늘부터" 우리는 변화되어야 한다.
16-17절에서는 농작물들에 미친 재난을 묘사한다. 농경 사회에서 이러한 심판은 경제와 생존에 치명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를 기억하며 본 말씀을 이해해야 그 결과에 대해 깊이 깨닫게 된다.
18절에서 앞의 내용을 요약하여 지난 날의 불순종의 결과를 기억토록 말씀하신 후, 19절에서는 이와 대조적으로 성전 건축을 재개하는 것이 미치는 복을 말씀하신다. 그들은 3개월 전(6월, 1:14-15) 하나님의 심판으로 그들의 산물들은 형편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올 때 하나님께서는 복을 주신다. 그리고 이것은 실재적인 것이다.
불순종한 결과를 우리에게 가르치시는 것은 우리에게 복이다. 그리고 그것을 깨닫는 것은 나의 책임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를 바탕으로 돌이켜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한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부어주실 것이다.
### 넷째 메시지 : 스룹바벨에 관한 메시야적 예언(2:20-23)
[학20-21상] 표제
B.C. 520년 키슬레브월 24일(12월18일)에 이 말씀은 학개에게 임하여, 유대 총독 스룹바벨에게 전한다. 다른 곳에서와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자신이 하나님의 사자임을 강조한다.
물론 백성들에게도 용기가 필요했다. 그러나 그들은 무관심했다. 그런 그들을 인도하는 스룹바벨에게도 위로와 격려가 필요했다. 하나님은 이처럼 모든 이를 돌보시는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큰 위로를 받는다.
[학2:21하-22] 장차 이방의 왕국들을 전복시킬 것을 선언함
하나님은 이방의 강대국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소개한다. 이 말씀은 다니엘 2장에서 큰 우상으로 상징된 이방 강대국들의 멸망을 생각나게 한다. 세계적 메시야 왕국이 이방의 왕국을 대신할 것이다.(단2:34-35,44-45) 이 말씀은 세계적 통치의 변화가 정치적일 뿐더러 군사적일 것을 암시한다. 주님의 재림 때에(계19:11-21) 아마겟돈 전쟁의 혼동 속에서(계16:16-18) 많은 사람들이 그들 자신의 형제를 향하여 칼을 들 것이다.(슥12:2-9,14:1-5)
[학2:23] 다윗 왕국의 회복을 선언
여호와께서 이방을 심판하는 미래의 날에 이 예언을 완성하실 것이다.(21-22절)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을 그의 인으로 삼으실 것이다.(23절)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을 선택하여 다윗 가계의 통로를 삼으시고, 메시야의 대리자를 삼으실 것이다.(23절) "내 종"이라는 표현은 주로 다윗 왕을 가리켰다.(사42:1-9,49:1-13,50:4-11,52:13-53:12;삼하3:18;왕상11:34;겔334:23-24,37:24-25) 학개와 스가랴는 스룹바벨을 가리켜 메시야의 칭호인 "가지"(Branch)라고 불렀다.(슥3:8,6:12;사11:1;렘23:5-6,33:14-16)
스룹바벨을 "인"(signet ring, 왕의 권위 또는 개인의 소유를 나타냄)에 비유하는 이유는 렘22:24-25의 비유에 나타난다. 하나님은 스룹바벨의 조부인 여호야긴이 그의 인장의 반지라 해도, 그의 손에서 그를 뽑아내어 느부갓네살에게 주리라 약속하셨다. 이후 이 약속으로 메시야의 후손의 가계에서 스룹바벨의 위치는 메시야를 예표하는 기능을 하게 되었다.(마1:12)
"그날에"라는 말은 메시야 시대의 미래의 완성을 가리킨다. 이 말은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을 정치적으로 통치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스룹바벨의 실제 통치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슥3:1-10) 여호수아가 존귀케 되는 것은 메시야에 의해 완성될 미래적 사실을 상징하고(슥6:9-15) 스가랴의 환상 속에서 그는 공적인 기능상 대제사장으로 묘사되었다. 이와 유사하게 스룹바벨은 다윗의 자손으로서 그의 대리적인 위치상 여호와의 "인"으로 불려지는데, 이는 최종적 다윗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에서 메시야적 완성을 위해 불리우는 것이다.(눅1:32-33) 즉, 미래의 그리스도적 천년왕국 시대에 스룹바벨은 다윗과 더불어 위임된 권세를 행사한다고 본다.
이 말씀은 1:2에서도 말한바와 마찬가지로 "만군의 여호와"로부터 나온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부르신 일에 신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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