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BKC 주석
[역사적 배경]
B.C. 586년 바벨론 군대에 의한 예루살렘 성전의 멸망은 유대의 국가적, 종교적 생활의 시대적 종말을 의미했다. 바벨론의 포로로서 유대인들은 성전도 없고, 희생제물도 없었다. 그들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할 수 있었지만(왕상8:48;단6:10), 바사왕 고레스 대왕의 관대한 정책 아래서만, 스룹 바벨의 지도 아래 5만명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스1:2-4;사44:28) 그때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선지자 학개와 스가랴가 함께 동행했다. 레위기적인 희생제사가 번제를 위해 재건된 제단에서 다시 드려지고(스3:1-6), 귀환후 제2년 성전의 기초가 놓여졌다.(스3:8-13,5:16) 그런데 사마리아의 훼방과, 바사의 압력으로 성전재건의 작업이 정지되었다. 그러자 영적인 냉담상태가 찾아왔고, 거의 16년 동안이나 바사왕 다리우스 히스타스피스(B.C.521-486)의 통치 때까지 성전건축은 정지되었다. 다리우스 제 2년(B.C.520년) 하나님은 학개를 일으켜서 유대인들로 성전을 재건하도록 촉구하셨다.(스5:1-2,학1:1) 그의 임무는 유다의 지도자들과 백성을 영적인 무기력 상태에서 일깨워서, 성전건축을 계속하도록 격려하는 것이었다. 학개의 사역에 있어 초기의 성공은 B.C.515년에 성전이 완공되기까지 스가랴의 계속된 사역으로 보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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