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요한복음 강해 - 아더 핑크
[1:1-13] 그리스도, 영원한 말씀
요한복음의 주제는 '그리스도의 신성'이며, 이는 시작에서부터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태초에 계셨고 아버지 하나님과 연합하여 계신 독자적인 인격이시며, 창조자이시며, 모든 하나님의 속성(생명, 빛, 말씀 등)이 예수님께 돌려짐을 우리는 볼 수 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이보다는 인간에 초점을 맞추고 싶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이시다. 말씀으로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명백히 나타내셨고(표명), 하나님의 생명과 사랑을 전해주셨고(전달), 하나님의 속성과 완전성을 보이셨다(계시). "하나님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 알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복음서는 그 예수님이 직접 주인공으로 등장하시는 책들이기에 심히 귀하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가르침만이 아닌, 그리스도에 집중해야 한다.
우리 인간은 타락하여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전혀 깨닫지 못한다. 예수님께서는 빛으로 어둠에 비추이시며, 책임있는 인간 존재가 되게 하도록 우리의 양심을 증거로 말씀하신다.(롬2:15) 그러나 그 빛을 깨닫지 못할 정도로 죄로 물든 존재가 우리 인간이다. 우리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는데 깨닫지 못하기에 미리 세례 요한을 보내어 증언하도록 예비하셔야만 하는 비참한 상황인 것이다. 우리의 본성대로라면 심판을 통해 영원한 죽음을 맛볼 수 밖에 없는 나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은혜를 보고서 어찌 찬양하지 않겠는가! 세례 요한처럼 등불의 역할(요5:35)을 우리는 감당해야 한다. 이때 우리는 기름을 공급받지 않으면 불을 비추일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내가 아무리 하나님을 열심히 섬긴다 할지라도 나에게 자랑할 것은 전혀 없으며, 더욱 회개와 감사가 충만해야 한다.
나는 너무도 죄로 가득한 자다. 그 사실을 알지만 한편으로 깊이 깨닫지 못하는 죄인이 바로 나다. 하나님을 대적한 것은 내가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사랑받을 자격없는 나에게, 믿고 영접하기만 하면 자녀로 삼아주신다고 말씀하시는 이가 하나님이다. 말씀을 묵상할수록 나 자신이 얼마나 비천한 자인지를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런 나를 붙잡아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구원은 하나님의 뜻으로 이루어진다.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한 자가 믿는다.(행13:48) 나 자신의 비천함과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목도하며,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고, 그리스도를 더욱 닮아가 이웃에게 그 사랑을 전하는 자로 쓰임받도록 오늘도 기도하며 실천해야겠다.
[1:14-18] 그리스도, 성육신하신 말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 이 "거하셨다"라는 말을 통해서 우리는 구약의 '성막'이 초림하신 예수님을 예표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한 자세한 언급은 생략하도록 하겠다.
예수님께서 육신이 되셔서 세가지 목적을 수행하셨다. 육신으로 오셨기에 죽는 것이 가능했고,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실 수 있었고, 우리가 인간으로서 따라야 할 모범을 남기셨다.
예수님은 영광이 충만하신 하나님이시다. 예수님께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 우리의 구원은 그분의 은혜로 인해 가능하다. 또한 그 은혜는 우리를 위해 대속하신 공의로 세워졌다. 예수님은 이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분이시다. 율법은 모세에게 "주어"졌으나,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다.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우리에게 이를 환히 드러내셨고, 우리는 그 충만한 데서 받는 복을 받는다. 구약을 보면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는 드러났으나 제한적이었다. 심지어 모세도 하나님의 얼굴은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신약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자신을 풍성히 "나타내셨"는가! 우리는 우리가 받은 것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풍성한 하나님의 현현을 누리는 복을 누리며 살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더욱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고, 감사하며 살겠다.
[1:19-34] 그리스도의 선구자
본문에서 두드러지는 인물은 세례 요한이다.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네가 누구냐, 엘리야냐? 선지자냐?"라고 물었을 때 그는 아니라고 대답한다. 그들의 질문에 대해 자기 자신을 높이고 싶었을 수 있다. 나는 별것도 아닌 것으로 스스로 자랑하기 좋아한다. 그런 요한의 모습에서 겸손함을 배워야겠다.
그리고 세례 요한은 자신은 그저 이사야가 예언한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예수님은 말씀이시고 그는 소리이다. 그는 예수님을 전하는 도구로서의 역할을 할 뿐이며, 그 소리가 그친다 하더라도 말씀은 영원히 남아있다. 그는 이스라엘 성전이 아닌 광야에서 외쳤다. 이는 당시의 잘못된 유대교에서 벗어났음을 의미한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 일컫는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기대한 왕, 선지자로서의 예수님을 소개하지 않고, "어린 양"으로서의 예수님을 소개한다. 성도는 예수님을 전해야 한다. 물론 많은 측면을 전할 수 있겠으나, 우리는 십자가를 전하지 않고서 복음을 전할 수 없음을 이 말씀으로 기억해야만 한다. 또한 "어린 양"을 계시의 점진성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아벨이 제사 드린 "첫" 새끼 양,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려 할 때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하시리라"는 믿음(창22:8), 유월절 어린 양의 피가 "사용됨", "인격화된" 양(사53:7). 이 모든 것들이 어린 양으로 오신 "예수님"을 예표한다. 그리고 그 구약에서 언급된 양이 예수님을 예표하는 것이었음을 본 절에서 선포한다. 우리는 이 사실에 감격하지 않을 수 없다.
세례 요한은 제사장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훌륭한 설교자였고, 성령의 충만함을 입은 자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의 신발끈 풀기도 감당하기 어렵다고 말할 정도로 겸손하다. 이렇게 겸손한 자를 하나님께서는 높이신다. 자꾸만 나의 의를 드러내려 하지 말자. 하나님께서는 중심을 아신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와 그의 위에 머물렀다. 예수님은 성령 하나님과 끊을 수 없는 교제를 맺는, 제 2 위격의 하나님이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또한 오순절 다락방에 성령이 나타났을 때, 인간들에게 죄가 있기에 그 죄를 사르는 불의 혀처럼 나타나셨으나,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으시기에 사랑과 슬픔을 상징하는 비둘기처럼 성령이 내려오셨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분에게는 아무런 죄가 없으시다.
[1:35-51] 그리스도와 그의 첫 제자들
1장을 마치며 전체적인 그림을 그려보자. 19-28절에서는 제사장, 레위인, 선지자가 등장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인 무지를 묘사하여 구약 시대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이튿날 29-34절에서는 세례 요한은 구약 시대의 종식을 알리며("내 뒤에", 30절)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을 알린다. 그리고 또 이튿날 35-43절에서는 기독교 시대를 알린다. 이제 35-51절에 대해 보다 자세히 살펴보자.
여기서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그려낸다. 다른 복음서(마4:18-22;막1:16-20;눅5:1-11)와는 다른 상황이 연출되기에 모순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요한복음에서는 제자들의 "회심"을 말하고 있으며, 다른 복음서에서는 제자라는 직무로 부르신 것을 그려낸 것이다. 이를 통해 요한복음은 "영적인 관계"를 드러내는 특징을 다시금 드러낸다.
4가지 회심의 경우가 나타난다.(안드레와 세례요한의 다른 한 제자/베드로/빌립/나다나엘) 이들이 회심한 상황은 모두 다르다. 이는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마다 다른 방식으로 회개케 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릴 각 개인의 성향을 너무도 잘 아시기에 각양각색으로 우리를 부르신다. 그러하기에 어떠한 성도도 자신의 체험만을 강요할 수 없으며, 말씀 안에서 더욱 겸손해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회심하게 된 각 경우를 살펴볼 필요는 있다. 말씀을 들음으로써, 전도로써, 예수님의 직접적인 부르심으로써 이들은 예수님 앞에 나아왔다. 우선 말씀 전파와 전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우리에게 깨닫게 한다. 우리는 더욱 이에 힘써야 한다. 또한 마지막 경우를 통해 아무리 시대가 악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구원할 자를 예비하시며 그들의 심령을 직접 깨우신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를 말씀 전파와 전도케 하신 것은 이를 통해서만 복음이 전파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하실 수 있으나 그 영광스러운 사역에 우리를 참여시켜주셨다는 놀라운 은혜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할 수 밖에 없다.
회심한 자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을 즐거워한다. 그러하기에 그와 함께 동행하는 시간이 너무 즐거워 시간가는 줄 모르며(39절), 그 귀한 말씀을 전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한다. 참된 회심을 하면 그리스도를 따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37절) 항상 내 안에 이런 믿음의 선한 것들이 있는지 점검해야겠다.
예수님은 그를 먼저 따른 세례 요한의 두 제자에게 무엇을 구하느냐고 물으시는데(38절), 두 제자는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라고 대답한다. 이 두 제자는 '무엇'을 구하기 이전에, 예수님께서 '어디 거하시는지', 즉 예수님을 먼저 구했다. 참된 신앙인은 우리에게 주어지는 복을 먼저 구하는 것이 아니라, 복주시는 하나님을 먼저 구해야 한다. 그리고 그분과 함께 거하며 동행하기를 항상 갈구해야한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대표적인 제자이다. 그는 안드레와 달리 매우 성질이 급한 자였다. 그에게 예수님은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42절)고 말씀하신다. '요한'은 '하나님의 선물', '시몬'은 '듣는다', '게바'는 '반석'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들음으로써 그리스도인이 되는데(롬10:17) 들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리고 이를 믿어 성도가 된 모든 사람들은 반석이 된다.(벧전2:5)
나다나엘은 49절에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다. 요한복음에서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증거하는 사람이 7명 있다. 이는 세례요한(1:34), 나다나엘(1:49), 베드로(6:69), 예수님 자신(10:36), 마르다(11:27), 도마(20:28), 본문의 저자(20:31)이다.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며 예수님께서 누구신지를 명백히 알아야 한다. 그분은 하나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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