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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3일 일요일

요한복음 7장

[7:1-13] 그리스도와 초막절
 예수님께서 유대에서 다니지 아니하시고, 갈릴리에 계셨던 것은 유대인들이 그를 죽이려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혜롭게 스스로를 지켜야한다. 불필요하게 위험을 자초해서는 아ㄴ된다. 우리 자신을 안전하게 보전할 때, 다음 봉사의 기회도 생길 수 있으며, 기독교를 욕되게 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혜로워야한다.
 예수님의 형제들은 예수님께 예루살렘에서 자신을 나타내라고 권고한다. 이는 예수님께서 받으실 영광을 그들도 함께 누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를 사도 요한은 "예수를 믿지 아니"하는 상태라고 말한다.(5절) 내가 예수를 믿고 따르는 목적은 무엇인가?  우리는 너무도 무지하여 우리의 영적인 상태를 온전히 확인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주님께 이런 모욕을 하지 않도록 매순간 기도하며 점검하겠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는 것이 나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 되지 않고, 더욱 겸손한자가 되도록 해야겠다.
 예수님은 그때 자신의 위엄과 영광을 드러내실 때가 아니셨다. 아직은 겸손하게 몸을 낮추셔야했다. 우리는 이러한 예수님의 응답에 또한 감사해야한다. 왜냐하면 아직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속량하지 않으셨기에 예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신다면 우리는 모두 파멸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마24:30;눅19:27;계1:7;계19) 우리는 하나님의 신적 지혜와 은혜를 온전히 알지 못한 채,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한채, 잘못된 것을 요구할 때가 많다. 내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는 내 기도가 어떠했는지를 먼저 살펴보고, 그것으로 인해 더욱 감사해야겠다.
 이어 예수님은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다고 말씀하신다.(6절) 왜냐하면 세상은 너희를 미워하지 않기 때문이다.(7절) 그 말은 그들이 그리스도께 속해있지 않고, 세상에 속해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안전을 도모해야하지만, 이를 위해 진리를 희석시켜서는 안된다. 우리가 말하는 진리는 비그리스도인들이 미워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견뎌야만 한다.
 초막절은 하나님께 감사를 올리는 명절이다. 그런 그 명절에 예수님의 형제들은 예수님과 함께하지 않고, 먼저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나는 과연 종교적인 행사를 좋아하는지, 아니면 진정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것을 좋아하는지 늘 돌이켜봐야겠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었다. 그들이 먼저 올라갔기에 예수님은 은밀히 올라가실 수 있었다.(10절) 하나님의 놀라우신 지혜와 섭리를 매순간 느끼고 싶다. 이를 볼 수 있도록 나의 믿음이 더욱 성장하기를 갈급한다. 또한 여기서 한가지 교훈을 더 얻을 수 있다. 예수님은 육정에 따르면 이스라엘인으로서, 율법 아래 나셨다.(갈4:4) 그는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명절을 지키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다. 말씀에 순종하셨다. 우리는 말씀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순종해야한다.
 많은 이들이 예수님에 관해 얘기했다. 누군가는 좋게, 누군가는 나쁘게 말하였다. 그러나 거기에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기에 쟁론만 있을 뿐이었다. 또한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공공연히 말하지 못하였다. 진실한 믿음이 없다면 그리스도를 담대히 증거할 수 없다. 그리스도를 신실하게 증언할 담대함을 더욱 갈구해야겠다.

cf. 초막절
 초막절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해내어 초막에 거주하게된 것을 상기시키 위해 제정된 명절이다.(레23:43) 또한 추수감사절이다.(출23:16) 솔로몬이 성전을 완성하고 봉헌하던 시기로서(왕상8장), 하나님께서 짓고 계신 완성된 영적 '전'의 원형이다.


[7:14-31] 성전에서 가르치신 그리스도 1
 예수님의 적인 "유대인들"조차 예수님의 가르침을 놀랍게 여겼다. 그러나 그들은 그 본질적인 가르침에 주목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어떻게 "글"을 배웠는지 주목한다. 말씀을 많이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그 참된 가르침을 진정 깨닫기 위해서는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깨끗하게 해주셔야 한다. 더욱 겸손히 하나님의 말씀에 귀기울일 수 있도록 간구해야겠다. 우리는 또한 예수님의 태도에 주목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신성의 한 인격이심과 동시에, 인간이셨다. 여기서 그는 하나님의 종, 인간으로서 그가 전하는 교훈이 아버지의 것임을 말하고 있다.(16절)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나눌 때, 나의 탁월함을 자랑해서는 안된다. 온전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한다. 주님께서는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면 그가 가르치신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를 알 수 있어야 한다고 하신다.(17절) 우리의 부패한 마음으로는 참된 진리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성령께서 주시는 분별력으로만 행할 수 있다. 요한복음 1장에서도 언급했듯이, 우리가 얼마나 어둠속에서 헤매고 있는지를 더욱 깨닫게 되며, 더욱 나 자신에게 자랑할 것이 없음을 깨닫는다. 나는 참으로 그리스도를 의지하는가, 아니면 나 자신을 의지하고 있는가?
  이어 18절에서즌 참된 교훈 속에는 불의가 없으며,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지식이라고 말한다. 역사속에서 언제나 그랬듯이, 오늘날에도 많은 이단, 잘못된 가르침들이 넘쳐난다. 이를 어떻게 우리는 분별할 수 있는가? 그 가르침이 말하는 자, 특정 인간을 높이기 위해 주어졌는지, 아니면 하나님을 높이는지를 확인하여 구별할 수 있다. 하나님의 한 인격이신 예수님께서도 자신을 높이지 아니하셨다. 또한 이는 우리 자신의 교만을 점검하게 하는 잣대가 되기도 한다. 항상 나 자신의 탁월함을 높이기 위해 힘쓰지 말자. 내가 탁월함이 있다면 그것 또한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임을 깨닫고 더욱 감사하자.
 모세의 율법을 지키기 위해, 안식일에 할례를 행하는 유대인들에게, 어찌 이율배반적으로 자신에 대하여 노여워하느냐고 꾸짖으신다.(22-23절) 우리는 시기, 미움에 눈이 멀어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바라보지 못하는지 확인해봐야한다. 특히 누군가에 대한 비판할 때에 참된 진리에 근거한 것인지, 증오에 의한 것인지 확인해야한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외모가 아닌 공의로 판단하라고 하시며, 중심을 바라봐야함을 말씀하신다. 남에게 보이기 위해 외식하고 있지는 않은가 돌이켜봐야한다.
 예루살렘 사람 중 한명이 예수님이 그리스도임을 부인하는 근거로,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는 어디서 오시는지 아는 자가 없으리라 하는지라"를 댄다.(27절) 그러나 마2:4,5절을 통해 메시야가 베들레헴에서 나타나실 것이 당시에 잘 알려져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사람이 근거로 대는 사7:14 말씀은 예수님께서 동정녀에게서 나실 것을 예언하는 말씀이다. 참된 가르침을 부인하는 자들이 스스로를 얼마나 속이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를 아신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그에게서 났고, 그가 예수님을 보내셨기 때문이다.(29절) 아버지는 오직 아들에 의해서만 알려진다.(마11:27) 그러므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으면 아무도 아버지께로 가지 못한다. 우리는 더욱 그리스도를 의지해야한다.


[76:32-53] 성전에서 가르치신 그리스도 2
 예수님꼐서는 사람들에게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33절)다고 말씀하신다. 이어 자신을 찾지 못할 것이며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34절)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실제로 6개월 뒤 이 땅에서의 직무를 마치고 올라가셨다. 여기서 또한 예수님의 신성이 드러난다. 예수님은 "나 있는 곳"이라 표현하셨다. 신적 본성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은 하늘에 영원히 계시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가 천국에 돌아가시는 것은 인간적인 본성에 근거한 것이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37절)고 서서 외치셨다. 그 외침 속에 예수님의 크신 사랑이 담겨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오라고 초대하신다. 우리는 그 초대에 응답하여 의지적으로 주 앞에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마셔야 한다. 주께로 나아가 은혜의 양식을 내것으로 삼아야 한다. 내 완악함을 깨닫고" 주님만을 의지해야 한다.
 참된 성도의 표지가 등장한다. 참된 성도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38절)와야 한다. 나는 과연 성도다운 삶을 살고 있는가? 내 의지만으로 이를 이룰 수 없다. 일반적으로 배는 물의 근원이 되는 곳이 아니라 소비하는 곳이다. 그런데 그곳에서 물이 흘러 넘치려면 공급이 충만해야 한다. 즉 그리스도께 나아가 마셔야하며, 그런 자에게서는 반드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올 것이다. 내 행위/모습은 나 자신을 점검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척도이지, 자랑의 근거가 될 수 없다.
 하나님께서 붙드실 때 우리는 보호받는다. 예수님을 잡으려 혈안이 되어있었으나, 아직 할 일이 남으셨기에 그들에게 잡히지 않았다. 우리는 이 말씀을 믿고 항상 담대해야 한다. 아직은 니고데모처럼 천천히 바뀌는 중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니고데모가 19장에서 믿음의 굳건함을 발한 것럼 나도 더욱 믿음을 발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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