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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22일 화요일

요한복음 8장

[8:1-11] 간음한 여자와 그리스도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한 여인을 데려와 예수님을 시험한다. 간음한 여인을 돌로 치라 하면 로마 법을 어기는 것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모세의 율법을 어기는 것이 되기에, 예수님을 곤란에 빠뜨리기 위함이었다. 예수님을 시험한 마귀의 모습을 통해서도 알 수 있지만, 하나님의 원수들도 성경을 인용하곤 한다. 우리는 그들의 중심을 분별해야 한다.
 또한 이 구절은 여인은 죄를 범하여 스스로의 힘으로 깨끗해질 수 없다는 것과, 율법대로 치리하면 그 결과가 죽음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명백히 보여준다.
 예수님께서는 몸을 굽혀 땅에 손가락으로 쓰셨다.(6절)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돌판(율법)을 주셨을 때 친히 써서 주셨다.(출31:18) 예수님께서는 그 율법을 쓴 것이 바로 내 손가락이었음을 알려주려 하셨으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그 깊은 의미를 깨닫지 못했다.(7절)
 예수님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씀하셨다.(7절) 이를 통해 율법의 심판은 거룩하신 자만이 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뒤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우리는 나 자신의 허물을 보기보다는, 타인의 잘잘못을 가리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먼저 나 자신도 죄로 얼룩진 자이며, 은혜 안에 있어야 하는 자임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님꼐서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셨다.(8절) 모세가 첫째 돌판을 깨뜨려, 하나님께서 둘째 돌판을 다시 주셨을 때, 그 돌판은 궤속에 넣고 속죄소로 덮었다.(출40:20) 예수님의 두번째 행동은 이것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우리는 대속자의 피 앞으로 나와야만 한다.
 율법의 선고가 집행되려면 두 증인이 필요하다.(신19:15) 그러나 고소한 자들이 양심의 가책을 느껴 모두 떠났다. 율법은 더이상 그녀에게 손댈 수 없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와 진리로 다가오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여인은 죄인이었다. 이는 악하고 음탕한 이스라엘을 보여주는 모습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용서하셨다. 그리고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11절)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라고 은혜의 말씀을 주신다. 그리고 그 은혜와 사랑 안에서 "죄를 범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러 오신 분이 아니었다. 우리는 우리의 의를 내세울만큼 의롭지 못하기에, 은혜없이는 심판받을 수 밖에 없다. 그런 우리를 꺼내주는 근거는 오직 "은혜"이므로 나 자신의 거룩함을 결코 자랑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이후 우리는 그 사랑 안에서 죄를 범하지 않도록 해야한다.
 이 말씀이 죄의 방종을 의미하지 않음을 보였다. 우리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나를 돌아봐야하는 것을 의미하지, 타인을 비방하는 근거로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나 자신도 은혜로 살고 있음을 기억하며, 더욱 겸손히 은혜와 긍휼을 갈급해야 한다.


[8:12-32] 세상의 빛이신 그리스도 1
 예수님은 세상의 빛으로 오셨다.(12절) 이 말씀은 1:3-4절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예수님은 모든 인간에게 지성과 도덕적 감각을 부여해주신 분이시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우리의 양심을 기초로 스스로의 도덕적 모습을 바라볼 수 있다.(롬1:19-20) 그러나 그것만으로 영적인 빛 가운데 있을 수 없다. 예수님은 도덕적 빛이실 뿐 아니라 영적인 빛이시다. 유일한 구원의 방편이시며 소망이시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
 15절의 말씀은 생략구문으로 여겨진다. 즉, "너희는 육체를 따라 판단하나 나는 아무도 (육체를 따라) 판단하지 아니하노라"는 말씀으로 생각한다. 바리새인들은 세속적 논리에 따라 판단하기에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그 신적 특성을 도저히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꿰뚫어 보시기에 예수님의 판단은 참되다(16절).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네가 너를 위하여 증언하니 네 증언은 참되지 아니하도다"(13절)고 말하는데, 예수님은 이를 그의 신성을 통해서 뿐 아니라 율법을 통해서도 증명하신다.(17-18절) 아버지께서도 예수님을 위하여 증언하신다는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구약의 예언, 세례요한의 증언을 통해 증언하셨다.
 예수님은 자신의 신성을 본문에서 나타내신다. 예수님은 혼자 계시지 아니하며 아버지와 함께 계신다.(16절) 아들은 아버지와 절대적으로 하나이다.(요10:30) 예수님은 위에서 났으며,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신다.(23절) 그는 거룩하신 분이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알지 못해 "네가 누구냐"(25절)고 묻고, 조롱할 때에도, 예수님은 그들에게 즉시 정죄하지 않으셨다.(26절) 다만 자신이 누구이신가를 앞에서 말했다는 사실(빛이며 진리이시다)을 확인시켜주셨다. 우리는 이런 온유한 예수님의 태도를 배워야 한다.  또한 예수님은 자신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아셨고, 또한 그로 인해 하나님으로서의 영광이 드러날 것을 알고 계셨다.(28절)
 당시 유대인들은 물론이며 오늘날도 그리스도를 찾다가 죄 가운데서 죽는 이들이 많다.(21절) 그러지 않기 위해 우리는 온 마음으로 구해야 하며(렘29:13), 성경 속에서 찾아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마땅히 성경을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면 죄 가운데 죽을 수 밖에 없다.(24절)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그 말씀을 배우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에 거해야 한다.(31절) "거하는 것"은 "그의 말을 지키는"(계3:8) 것이다. 끝까지 견뎌야 한다. 그것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구원받은 자의 표시이다.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32절) 진리는 사탄의 권세로부터 우리를 영적으로 자유롭게 해준다. 우리를 영적인 죽음에서 구원하며, 해방시켜준다.


[8:33-59] 세상의 빛이신 그리스도 2
 앞서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한다고 말씀하셨다. 진리를 받아들이기 전에는 죄의 종이기 때문이다. 영적인 문제를 살피지 않더라도, 당시에 로마가 유대를 지배하고 있었다. 이전에는 바사, 바벨론, 애굽 등에 의해 수차례 지배받으며 살았다. 그런데도 유대인들은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33절)이라고 뻔뻔히 말한다. 영적인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죄의 종이라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현실이다. 예수님은 영적인 문제를 집중적으로 고찰하신다.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34절)이라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악한 선택을 "자유롭게" 한다고 생각하는 자들에게, 그것은 죄의 "종"으로서 속박당하는 것임을 지적하신다. 이를 깨닫는 자에게 자유가 있다. 이런 종들은  (야곱의,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집(히3:5,6)에 영원히 거하지 못한다.(35절)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자유롭게 할 때에만 자유로워질 수 있다.(36절) 이것이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신 목적이다. 이 자유는 ⓐ죄의 정죄, 율법의 형벌, 하나님의 진노로부터의 구원(사42:7;50:1;롬8:1), ⓑ사탄의 권세로부터의 구원(행26:18;골1:13;히2:14,15), ⓒ죄의 속박으로부터의 구원(롬6:14,18), ⓓ사람의 권위로부터의 구원(갈4:8,9;5:1;갈2:20-22)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건짐을 받고 주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없이 섬길 수 있게 된다.(눅1:74,75)
 예수님은 아버지에게 본 것을 말하셨고, 유대인들은 그들의 아비에게 들은 것을 행했다.(8:38) 우리의 말과 행동이 우리가 누구인지를 드러낸다. 스스로가 말뿐인 그리스도인인가, 아닌가를 분별해주는 표지가 된다. 그것은 외적인 모습만을 일컫는 것은 아니다. 유대인들은 외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고, 경건의 모양을 지키고 있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이 없는 자들인지 점검해보아야 한다. 이를 예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이 행한 일들을 할 것"이라고(39절) 지적하셨다. 나는 과연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사자에게 의무를 다하고 있는가?(40절)
 예수님께서 진리를 말해도 유대인들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은 마귀의 자식, 죄인이기에 진리를 거부한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그 양심을 찌르는 하나님의 말씀에 자복하여, 엎드린다. 사랑과 존경과 순종의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예수님은 본문에서 스스로를 충만히 계시하신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자신의 뜻보다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더욱 강조한다.(42절) 또한 스스로의 영광을 드러내지 않으신다.(50절) 그분의 말씀을 따를 때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는다.(51절) 죄인들은 눈이 멀어 진리를 깨닫지 못하며 어리석은 것으로 보나, 중생한 자들에게는 빛이 된다.(52,53절) 그러므로 중생한 자들은 자신을 구원하신 하나님께 더욱 감사해야 한다. 아버지께서 예수님께 영광을 돌리신다.(54절) 이는 예수님께서 탄생하셨을 때 천사들을 보내시고, 동방 박사들이 경배하러 오고, 세례 받을 때에 사랑하는 아들임을 선포하시고, 죽으실 때에 몸이 썩지 않도록 하시고, 승천하실 때에 그의 오른편으로 높이신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셨다.(55절) 예수님은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계셨던 분이다.(58절)
 아브라함은 예수님의 때를 보기를 기대하고, 봄으로써 기뻐했다.(56절) 예수님께서 죽임당하시어 그의 죄를 모두 없애셨고, 다시 재림하셔서 그의 명예가 확립되고 영화롭게 되는 것을 보고 기뻐하였을 것이다. 아브라함은 이를 믿음으로 보았다.(히11:13) 이삭을 바치는 상징을 통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보았다. 특별 계시로서 알리셨다.(시25:14) 아브라함이 이토록 기다린 예수님을 기뻐하지 않은 유대인의 모습은 아브라함의 자녀가 아니라는 증거이다.(39절) 오히려 그들은 돌을 들어 치려했다.(59절)
 예수님은 말씀을 통해 우리가 참된 성도인지 아닌지 분별할 수 있는 시금석을 주셨다. 나는 과연 그리스도인으로서 겸손히 통회하며,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고, 나의 의를 드러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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