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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31일 토요일

요한복음 9장

[9:1-7] 그리스도와 눈 먼 걸인 1
 8장에서 그리스도를 멸시하고 증오하는 인간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이어 9장에서 은혜를 베푸신다. 자연인의 모습이 악할수록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얼마나 큰지 더 깊이 깨달을 수 있다.(롬5:20) 나의 모습이 죄로 가득차있다는 사실을 볼 수 있는 자, 마음이 가난하며 겸손한 자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바라볼 수 있다.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까닭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손을 먼저 내미셨기 때문이다. 본문에서도 맹인이 먼저 예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맹인을 먼저 보셨다.(1절) 예수님께서 이토록 세세하게 우리를 돌아보셨던 것처럼, 지금도 우리를 돌보시고 계신다. 라일 주교는 예수님께서 (복음서에서) 맹인들을 고치신 사실에 주목한다. 이는 죄인의 상태, 빛을 볼 수 조차 없는 상태(요1:5)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빛을 있으되 이를 볼 수도 없는 상태가 자연인의 상태이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태어날 때부터 눈 먼 자는 누구의 죄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냐 묻고(2절) , 이에 예수님은 그의 부모나 그 자신의 죄의 대가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시기 위함이라 대답하신다.(3절) 이 장면에서 욥을 비난한 친구들을 떠올릴 수 있다. 우리는 누군가의 고통에 대해 냉담하거나 비난해서는 안된다. 그들의 아픔을 외면하고, 이론적으로만 분석하려하면 안된다. 그것은 교만함의 결과이다. 제대로 사정도 모른 채 판단하기 좋아하는 우리의 악한 본성에 기인한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맹인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고난을 겪고있다고 말씀하신다. 그가 눈을 뜨게 되어 하나님의 능력이 증거되고, 그가 영광을 받으시도록 말이다. 그것은 이웃을 위한 것일 뿐 아니라, 나 자신이 하나님께로 돌아서게 하는 은혜일 수도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굽어 살펴야 한다. 또한 나 자신이 현재 겪고 있는 아픔에 대한 위로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위로를 말씀을 통해 우리는 알 수 있기에 말씀을 읽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는 말씀을 통해(4절)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잘 사용하여 하나님을 증거하라고 말씀하신다. 이어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5절)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는 3년간의 공생애를 마치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밤이 곧 올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빛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할 때까지, 그를 없애려는 수많은 중상 모략에도 불구하고 빛나셨고, 살아계셨다. 우리는 이 말씀을 기억하며 더욱 담대히 그리스도인의 모습으로, 빛으로 나아가야 한다.
 예수님께서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맹인의 눈에 바르셨다.(6절) 이를 어떤 주석가는 비천한 모습으로 지상에 오셨으나 자신 안에 생명의 신적 효력을 지닌 그리스도의 인성을 상징하는 것이라 말한다. 예수님께서는 맹인에게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했다.(7절) 맹인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만 한다. 순종은 우리의 행동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그것은 믿음의 표현이지, 대가를 얻기 위한 행동이 아니다. 이러한 진정한 순종이 있을 때에 우리는 맹인처럼 눈을 뜨게 된다.(7절) 현재 나는 그리스도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고 있는지 돌아봐야겠다.


[9:8-23] 그리스도와 눈 먼 걸인 2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이적을 행하신 것이 복음서에 종종 나타난다. 본문의 이적도 그러하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말씀을 전파하시고 곤경에 처한자들에게 긍휼을 베푸셨다. 이를 통해 바리새인들의 잘못된 안식일 개념을 지적하신다. 예수님은 율법을 완성하러 오신 분이다. 그런 분께서 의도적으로 유대인 스스로 만든 율례를 깨드리심으로써 우리를 율법주의, 잘못된 굴레에서 해방시켜주신다. 이 또한 하나님의 은혜이다.
 이 맹인은 수많은 질문을 받았다. 그러나 항상 정직하고 겸손하게 예수님이 자신을 치료했음을 증거했다. 또한 예수께서 선지자이심을 고백했다.(17절) 나는 이토록 정직하게 나를 드러내지 않으며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고 있는가?


[9:24-41] 그리스도와 눈 먼 걸인 3
 본문의 맹인은 바리새인 앞에서 담대하게 그리스도를 변론하고 있다. 그는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고,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담대하게 답변했으며, 집단(유대인, 유대교)에서부터 쫓겨나는 것도 감수했다. 맹인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다.
 말씀을 묵상하며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떠올리게 되었다. 예수님을 믿는 많은 자들이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얼마나 허탈했을까? 내가 온 열정을 다 바쳐서 믿었던 예수님이 무기력하게 십자가에 박혀 죽으신 모습을 보며. 그러나 사흘 뒤에 예수님은 부활하셨다. 물론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실 수 밖에 없었으나 부활하심으로써 우리에게 승리를 천명하셨고, 이를 그의 자녀들에게 보이셨다. 이 맹인과 같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듣고 얼마나 큰 위안을 얻었을까! 물론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을 듣고 큰 회의를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부활 사건을 바라보며 내가 예수님을 영접했던 그 믿음을 더욱 굳건히 하고, 마음에 큰 위안이 있었을 것이며, 내가 현재 당하는 고난에 있어서 더욱 의연해졌을 것이다.
 나는 어떠한가? 이 땅에서 고난을 당하더라도 위의 것을 바라보고 견뎌낼 믿음이 있는가? 맹인과 같이 그 어떤 협박과 회유에도 굴하지 않고 예수님을 당당히 고백하는 믿음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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