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14:1-11] 제자들을 위로하시는 그리스도 1
아더 핑크의 1절의 해석에 크게 공감한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지내셨으나, 이제 떠나셔야 한다. 제자들이 눈으로 볼 수 없는 하나님을 믿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떠나시더라도 예수님의 존재와 사랑과 돌봄을 온전히 믿으라는 명령이다.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우리는 온전히 죄사함을 받는다. 오직 예수님의 죽음으로 우리는 천국에 갈 수 있게 됨을 기억해야 한다(2절). 우리는 그곳에서 주님과 함께 지낼 것이다(3절). 4절은 존브라운의 주해를 요약하겠다. 13:36에서 베드로가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라고 묻자 예수님은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라고 대답하셨다. 예수님은 아버지 집으로 가신다. 4절의 말씀은 예수님은 제자들이 그곳에 갈 수 있도록 준비하러 가는 것임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준비가 완성되면 제자들을 데리러 오실 것이다. 예수님이 어디로 가실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예수님을 의지해야) 그곳에 갈 수 있는지 알리신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아버지께로 가는 길, 그 경로를 알리신 것이다. 그러나 도마는 이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고(5절), 예수님은 자신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오직 예수님 자신을 의지하여 우리가 아버지께로 갈 수 있다고 가르치신다(6절). 더 나아가,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리신다(7절). 그러므로 예수님을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과 다름없다. 오늘날 성도들은 예수님을 보지못하는데도 사랑하며 믿는다. 그런 자들을 예수님께서는 더 복되다고 말씀하셨다(20:29). 그러나 여전히 빌립은 이해하지 못하고 아버지를 보여달라 하기에(8절), 예수님께서는 책망하셨다(9절). 그리고 이어 10절에서 예수님과 하나님의 완전하고 친밀한 일체를 공표하신다. 설령 아버지와 예수님이 하나라는 사실을 말로써 믿지 못할지라도, 예수님께서 행한 일을 통해서 믿으라고 말씀하신다(11절).
[요 14:12-20] 제자들을 위로하시는 그리스도 2
12절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는 말씀임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님은 모든 성도들이 이적을 행할 것이라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것이다. 이는 예수님이 떠나셔서 절망할 수 있는 제자들을 향한 위로이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로 가시기 때문에, 또한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면 행하겠다고 약속하신다(13절). 즉, 제자들이 예수님이 공생애동안 하신 것보다 더 큰 일을 하게 되는 것은(12절), 예수님께서 떠나신 후, 그들의 요청에 응답하셔서 함께하심으로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13절). 즉, 기도는 하나님과의 거리감을 없앤다. 우리는 이런 기도를 할 때, 예수님과 연합해야 하며, 예수님의 공로를 근거로 해야한다(14절). 또한 그의 영광이 되는 것만을 기도해야 한다. 즉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한다는 것은 자기의 뜻을 제쳐두고 하나님의 완전하신 뜻에 순종하는 것이다.(아더 핑크) 즉, 기도를 통해 믿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그 믿음의 원천은 사랑이다. 즉,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즉 믿는 성도는 하나님께 기도한다. 하나님을 향한 그 사랑은 계명을 지키는 행위를 통해 드러난다(15절).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16절). 예수님은 성도를 사랑하시기에 결코 놓지 않으신다. 그 보혜사, 성령은 진리의 영이시다(17절). 말씀에 기반하여 우리를 감동시키신다. 또한 성령은 말씀이신 그리스도의 영이시며, 그리스도를 영광스럽게 하신다. 이러한 영광스러운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거하실 것임을 약속하셨다(17,18절).
예수님은 곧 십자가에 박혀 죽으실 것이다(19절). 제자들은 물론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기도 했지만, 하나님 우편에 계심을 믿음으로 보았다. 그 바라볼 수 있는 근거로서 "살아 있"음을 제시했다. 즉, 하나님을 믿고 거듭난 자는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믿는 자들은 그리스도와 연하되어 있기 때문에 보는 것을 넘어선다. 그러므로 그의 생명이 내 안에 있음을 말씀하신다(20절). "그 날", 오순절에 제자들은 이를 깨달았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그 날" 우리는 알게될 것이다.
[요 14:21-31] 제자들을 위로하시는 그리스도 3
예수님은 성도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신다(21절). 우리에게 자신을 나타내기 위한 조건으로 예수님은 자신을 사랑하는 것, 계명을 지키는 것을 말씀하신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모두 지킬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의 말씀에 순종하려는 자에게 계명을 지키는 자라 말씀하신다. 그런 자에게 자신을 나타내신다. 이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확신하며, 시험에 처할 때 위로를 얻는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인 '가룟인 아닌 유다'가 예수님께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 나타내시고 세상에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라 묻는다(22절). 물론 이에 대해 17절에서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으나 깨닫지 못하고 묻는다. 이에 에수님은 다시 친절히 대답하신다(23-24절).
예수님은 21절을 더욱 발전시켜 대답하신다. 성도는 단순히 예수님의 계명(명령)만이 아니라, 그의 말을 지키는 자다(23절). 그 축복은 예수님께서 나타내시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거처를 함께하는 것으로 나타난다(23절). 그러나 세상은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아(예수님의 말을 지키지 않아) 예수님께서 나타내실 수 없다. 예수님의 말씀은 아버지의 말씀이기 때문이다(24절).
우리가 예수님을 이해하도록 성령을 보내주실 것이다(26절). 아버지께서 자신을 알리기 위해 예수님을 중보자로 보내신 것처럼, 아버지와 아들은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어 아버지와 아들을 알리실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를 진노에서 건지셔서 우리에게 평안을 끼치신다(27절). 이에 그치지 않으시고 예수님께서 누리셨던 평안을 체험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주신다(27절). 우리는 이 평안을 누리기에 세상이 우리를 증오하고 공격하더라도 근심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평안을 끼치시기 위해 죽으셔야 하므로,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부활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우리에게 설명하신다(28절). 아버지는 예수님보다 크다. 이는 그의 존재가 열등하다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의 뜻 안에서, 아버지께 보고하는 중보자로서의 직무를 취하신 겸손을 뜻하며, 동시에 십자가에 돌아가셔서 세상의 수치를 받는 그의 상태를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상태와 비교한 것이다. 그런 아들이 아버지께 돌아가시는 일이니 얼마나 기쁜 일인가!
이 모든 말씀을 들었을 때 제자들은 온전히 깨닫지 못했으나, 성령께서 오셔서(26절) 그들이 깨닫고 믿게 하실 것이다(29절).
1Xbet - Viecasino.com
답글삭제1xBet, a new online casino that is powered 카지노 by N2 Games and with an extensive gaming 1xbet experience, is proud to announce that クイーンカジノ it has signed an